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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25일(水)
젠더 감수성과 문화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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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 부장

요즘 최고 화제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연하남 신드롬’과 ‘스타 앓이’를 낳고 있지만, 이와 함께 한국에선 흔치 않은 여성 시각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드라마는 30대 여성 직장인의 일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직장 내 성희롱과 여성 차별을 담아내고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남자친구의 데이트 폭력 문제도 보여준다. 이제까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 직장인 서사라면 회사 상사인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도움으로 커리어에서도 성공을 거두는 ‘신데렐라 원형’의 반복이었다.

또 아무리 거절해도 포기하지 않는 남성, 여성을 벽에 밀어붙이고 강압적으로 키스하는 것은 남성적인 사랑의 클리셰로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오랜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흐름에 의미 있는 변곡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정확하게 거절하고 정당하게 항의하는 여성으로 각성해나가는 과정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화제의 드라마 ‘라이브’는 얼마 전 성폭력 피해자가 제대로 분노하지 않는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딸이 데이트폭력을 당하고도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자, 아빠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착하고 안 착하고는 아무 문제가 안 돼. 이해받을 수도 없고. 그건 범죄야.” 이 두 드라마는 여러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쌓은 명 PD와 노련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개인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 Too)가 3개월을 맞는다.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 정치인 안희정을 거치며 광풍처럼 몰아쳤던 미투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사건들에 묻히면서 뉴스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법적 절차는 진행 중이며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고 있지만, 썩은 부분을 완전히 도려내자던 초기의 바람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짧은 시간 동안 사회 전반의 젠더 감수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젠더 감수성’에서 감수성(sensitization)은 ‘예민하게 감각’하는 것으로, 기존 방식대로 일상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의도적으로 감각을 증폭시켜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인지하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실제로 예민해진 젠더 감수성은 문화 콘텐츠 전반을 바꿔나가고 있다. 여성주의 드라마가 나오고, 페미니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연극의 마초 캐릭터가 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예민해진 젠더 감수성이 최근 문화 콘텐츠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는 페미니즘 이론서, 젠더 문학처럼 여성주의를 직접 다룬 콘텐츠들이 나온 1단계였다면, 이제는 모든 분야에 공기처럼 스며드는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문학계에서 이광수, 김동인에서 출발하는 한국 근대문학도 젠더 감수성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개인도, 사회도 한번 예민해진 감각을 더 벼리기를, 그래서 이 감수성이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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