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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26일(木)
‘삼베 화가’ 박장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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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그 잎을 말려서 마리화나라고도 불리는 환각제인 대마초로 악용하는 대마(大麻)의 순우리말은 삼이다. 껍질 안쪽으로 만든 인피(靭皮)섬유가 수분을 빨리 흡수·배출하고, 항균성·항독성·견고성·내구성 등이 뛰어난 삼은 가장 오랜 재배 역사를 지닌 식물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섬유로 짠 삼베, 곧 마포(麻布)는 기원전 3000년쯤부터 옷감이었고, 15세기 초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바탕인 캔버스로도 본격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벽화 외엔 주로 나무판 위에 그려오다가, 유화 물감의 색과 질감이 잘 드러나면서 옮기기도 쉬운 삼베, 곧 리넨(linen)으로 대체해 현재에 이른 셈이다.

그런 내력을 지닌 삼베 캔버스에 동일한 색조의 물감으로 음영을 섬세하게 그려, 주름진 삼베가 드리워진 커튼처럼 보이는 작품에 천착했던 화가가 박장년(1938∼2009)이다. 1975년부터 타계하기까지 ‘삼베’ 연작만 발표한 그는 ‘단색화와 극사실주의 회화를 아우르는 독창적 기법으로 한국 현대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론가 윤진섭이 “극사실 기법을 사용해 커튼을 그리긴 했지만, 그의 작업을 딱히 극사실 회화 범주에 넣기가 주저되는 이유는 풍경의 일부로서의 커튼이 아니라 ‘대상의 개념화’에 관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의 작품을 개념 미술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배경도 마찬가지다.

‘삼베 화가’ ‘마포 화가’ 등으로도 일컬어지는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작업을 두고 “캔버스 표면을 표면 그 자체로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천은 그림 속에서 말한다”며 삼베인 천의 말을 이렇게 대변했다. “나는 조형물, 인간에게 공헌한 고귀한 조형물이다. 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나를 버리지 말라. 나를 나이게 하라. 본래의 천으로 영원하게 하라.” 이런 말도 남겼다. “나는 천을 그렸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천이다. 낡아 버린 천, 더럽혀진 천, 제 할 일 다 하고 소멸될 운명의 천, 이런저런 표정의 천이 한(限) 많은 사연들을 소리 없이 말한다. 온몸으로 말한다.” 그런 작품 90여 점을 보여주는 그의 회고전 ‘박장년 1963∼2009, 실재와 환영의 경계에서’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지난 3월 22일부터 오는 5월 13일까지 이어진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는 말에 진지하게 마음의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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