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만명 강제 불임수술… 후지모리 18년만에 법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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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000년 재임 기간중
가족계획 정책으로 강제 시행
토착 원주민·농촌 주민 대상
인권단체 “수술중 20명 사망”

페루검찰, 범죄인정 기소 결정
전직 보건부장관 3명도 재판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사진) 전 대통령 등이 원주민·농민에게 불임수술을 강제한 혐의로 퇴임 이후 18년 만에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전 세계는 ‘종(種)의 말살’과 다를 바 없는 반이성적, 반문명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후지모리 행정부의 행위에 대해서 페루 법정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6일 AFP통신 및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페루 검찰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3명의 전 보건부 장관을 재임 동안 5명의 여성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킨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페루 여성 인권 단체 데무스는 성명에서 “검사의 기소 결정은 수천 명의 케추아족 여성들, 소작농들, 극빈층 토착민 여성들을 강제로 불임으로 만든 국가 정책이 심각한 인권 범죄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데무스 대변인이자 피해자 변호인 밀턴 캄포스는 “검사의 기소는 후지모리와 전 장관들의 범죄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후지모리 행정부의 케추아족 강제 불임수술 문제는 2002년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 행정부가 의회 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면서 제기됐다. 페루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톨레도 대통령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 재임 당시(1990∼2000년) 시행한 ‘가족계획 정책’으로 토착 원주민 및 농촌 주민들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했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최소 34만6000여 명의 여성과 2만4000여 명의 남성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것으로 추산했다. 위원회는 조사 보고서에서 “강제 불임수술이 사전 진료·진단 없이 이뤄졌고, 후지모리 행정부는 거부할 경우 의료혜택을 박탈하겠다는 협박을 가했다”고 언급했다. 페루의 안데스 및 아마존 원주민 여성기구(ONAMIAP)에 따르면 불임시술 과정에서 2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후지모리 행정부 당시 인사들은 “불임시술은 자발적으로 이뤄졌으며 수술을 받은 가정에서는 빈곤 문제가 해결됐다”며 정책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페루에서 태어난 일본인 이민 2세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출산율을 낮추는 것이 페루의 빈곤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불임수술 정책으로 1990년 여성 1명당 3.7명이었던 출산율이 10년 뒤 2.7명으로 떨어졌다. 결국 페루 검찰은 2014년 당시 가족계획 정책에 대해서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지난 2016년 12월 다시 소송을 냈으며 이번에 페루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면서 20세기 후반 최악의 원주민 말살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페루 케추아족 강제불임시술’ 정책에 대한 페루 법원의 판단이 주목되고 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