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靑·黨, 김정은 제스처에 현혹되면 本案 그르친다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표현도 넘어 ‘우상화’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급기야 24년 전에 죽은 김일성을 치켜세우는 발언도 나왔다. 회담 상대라는 점에서 예우는 필요하지만, 북한 체제와 독재자의 실체(實體)를 왜곡하거나 호도하는 수준까지 나가서는 안 된다. 북한 측은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했고, 그에 따라 정교하게 연출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그런 모습에 정말 감동한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30일 “시원시원한 돌파력과 동시에 꼼꼼한 측면들이 보여졌다”면서 “(표준시 통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느끼고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위원장 모습은 감격적”이라고 했고,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균형감”을 칭송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친근하게 열린 마음”, 정세현 전 통일장관은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게 김일성 주석과 비슷한 측면이 있더라”고 전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정은에게 ‘북에 있는 누님 두 분과의 상봉’이라는 개인적 부탁을 하기도 했다. 과거 공직자들은 북의 그런 제의에 ‘차례를 기다리는 많은 이산가족’을 앞세우며 사양했었다. 청와대는 김정은의 ‘금연’과 서슴없는 ‘건배’를 높이 평가하고, 리설주가 김정숙 여사에게 “같은 성악을 전공해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경쟁적으로 남북 교류에 뛰어들고 있다.

김정은이 정상회담 행사 중 기자들에게 “잘 연출됐습니까” 하고 말한 것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나왔는지 말해주는 단서다. 이런 제스처에 속아, 북한이 최악의 인권탄압을 하는 독재 체제이며 김정은은 필요하면 형과 고모부도 잔인하게 처형한 독재자임을 잊어버리면, 북핵 폐기라는 본안(本案)은 물론 자유민주 통일도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