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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1일(火)
피아노 선율 따라 ‘폭발하는 욕망’… 아∼ 질긴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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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여섯 살 때부터 말을 못하게 된 에이다(홀리 헌터)는 아버지에 의해 딸 플로라와 함께 뉴질랜드의 한 땅부자 알리스더(샘 닐)에게 정략결혼으로 팔려 간다. 에이다에게는 피아노를 치는 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에이다가 못마땅한 알리스더는 피아노를 배에서 내린 곳에 버려두고는 옷가지만 챙겨 모녀를 집으로 데려간다.

마오리족과 숲으로 둘러싸인 에이다의 새로운 터전은 모녀에겐 자연 속 지옥이다. 피아노를 잃은 에이다는 오로지 악보 속 멜로디를 상상하며 산지옥을 버텨나간다. 설상가상으로 알리스더는 해변가에 있던 피아노를 그의 사업 파트너 베인즈(하비 케이틀)에게 팔아버린다. 그러나 피아노를 뺏긴 것이 에이다에게는 새로운 삶의 도화선이 된다. 베인즈는 알리스더에게 피아노를 사는 조건으로 에이다에게 레슨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레슨을 위해 방문한 첫날, 베인즈는 연주만 듣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의 레슨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베인즈는 연주를 하던 에이다의 목에 키스를 하며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방문할 때마다 검은 건반 한 개씩이 에이다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베인즈는 제안에 응한 에이다의 몸에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얹는다. 구멍 난 스타킹 위의 살점으로 시작한 그의 연주(?)는 에이다의 어깨로, 등으로 악장을 넘긴다.

에이다가 오지 않는 날이면 베인즈는 알몸으로 피아노 곁을 서성인다. 에이다의 건반을 만지고, 몸을 비벼댄다. 베인즈가 에이다에게 빠졌듯 에이다도 점차 그에게 중독된다. 에이다가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자 낙담한 베인즈가 검은 건반의 수를 다 채우기도 전에 피아노를 에이다에게 보내버렸을 때 에이다는 단숨에 베인즈에게 달려간다. “당신으로 인한 사랑으로 난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다”고 말하는 베인즈. 사랑으로 사지를 갉아 먹힌 남자 앞에서 에이다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걸친 옷을 벗어버린다. 짐승처럼 매달리는 베인즈에게 에이다는 그가 원했던 모든 것을 내준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1993년작 ‘피아노’(사진)는 압도적인 러브스토리와 피아노 선율에서 느껴지는 관능적인 이끌림으로 보는 이를 피곤하게(?) 만든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피아노 연주는 베인즈의 폭발적인 욕망과 닮았다. 느긋이 시작해서 절정을 넘기는 테마곡 ‘더 피아노’를 듣고 있노라면 베인즈의 뜨거운 숨이 귀를 감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온몸이 짓눌린 것 같은 아련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칸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뉴질랜드 자연의 절경을 펼친 장면이 넋을 놓게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소는 남녀의 애처로우면서도 질긴 사랑이다. 알리스더는 둘의 관계를 알아내고 질투심에 에이다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베인즈를 만날 때마다 에이다의 또 다른 손가락이 잘려나갈 것이다. 알리스더는 손가락을 베인즈에게 보낸다. 그렇게 에이다의 영혼이 거세되고 눈앞의 모든 추가 죽음을 가리키고 있을 때 에이다가 알리스더에게 마음속 말을 전한다. “베인즈가 나를 데려가게 해요. 나를 구해주게 해요”. 처음으로 알리스더는 에이다의 마음속 절규를 듣는다. 그는 분노와 절망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에이다와 베인즈를 보내주기로 한다.

어쨌거나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멍이 든 듯 가슴이 욱신거린다. 선율로만 세상을 만나는 한 여자에게 피아노 건반을 준 남자.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실 수 있는 거리에만 있어도 발정 난 것처럼 여자에게 붙어 떨어질 수 없는 남자. 캠피온 감독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또한 영화에 나오는 피아노 연주와 수화를 모두 직접 소화해 낸 홀리 헌터는 대사 대신 손으로 연기를 한 셈이다. 건반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듯 수화로 말을 하는 헌터의 손은 극 중 에이다의 입을 대변하듯 부드럽고 우아하며 농염하다. 캠피온의 경이로운 스토리와 헌터의 손, 그리고 마이클 니만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영화를 마치 신화를 읽듯, 곱씹고 찬미하게 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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