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레토릭에 ‘정신적 무장해제’ 당해선 안 된다

4·27 판문점 회담을 계기로 대북 인식이 급반전하고 있다. 현장에 있었던 정부 당국자들은 물론, TV로 생중계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지켜본 많은 사람이 갑자기 호감(好感)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든 대결보다는 대화,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 공격까지 걱정해야 했던 만큼, 국민의 이런 희구가 모여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그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럴수록 ‘국가적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일반 국민은 분위기에 들떠 흥분하더라도 정부는 ‘최악에 대비한다’는 기본 원칙을 놓쳐선 안 된다. 그런데, 정부가 더 조장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30일 김정은에 대해 “솔직 담백하고 예의가 바르더라”고 인상평을 했다. ‘노벨평화상’ 운운하며 희희낙락하는 분위기도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여당을 방문해 “(김정은이)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면서 “맹약, 확약할 수 있다는 표현을 썼다”고 덧붙였다. 이를 전하는 조 장관이나, 듣는 여당 인사들에게 김정은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따져보려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최후 보루인 국방부의 움직임은 더 심각하다. 정부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긴장의 끈을 놓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잠재적 적(敵)에 대해서까지 더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더 나선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포함한 심리전은 한국이 우위인 비대칭 전력이다. 방송을 중단하더니 1일 시설 철거에 착수했다. 북한 인권주간 행사에 대한 재정지원도 철회했고,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 자제도 요청했다고 한다.

남북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북한 핵무기 위협도, 북한 독재 체제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한나절 가량 판문점 남측 지역에 머무르면서 보여준 제스처와 레토릭이 이런 변화를 초래했다. 이 정도면 ‘정신적 무장해제’ 수준이다. 김정은은 하루 만에 다시 핵 불바다 위협을 할 수 있다. 국가 안보는 무력(武力)과 동맹, 그리고 정신력에 의해 지켜진다.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정신력 비중이 4분의 3”이라고 했다. 평화는 상대방의 현란한 말로도, 평화협정으로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