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美大 50년 지기 “친구들이 있어 계속 그립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 ‘64학번’ 동기들이 ‘동기 합동전’을 위해 작품 한 점씩을 들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금보성 아트센터에 모였다. 왼쪽부터 정찬경·임명택·이종승·박승범·음영일·정석진 화백. 김낙중 기자 sanjoong@

64학번 老화백 합동전시회
“여럿이 가면 멀리 간다고해
마라톤 완주하듯 작품 완성”

1960년대 서울 도심 한복판의 세시봉이 ‘통기타 가수들의 산실’ ‘청바지문화의 원조’라 불리면서 송창식·윤형주·김세환·이장희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할 무렵, 홍대 앞 화실과 선술집에서는 통기타 문화와는 또다른 문화가 형성돼 가고 있었다. 그 문화의 주인공은 젊음과 패기로 가득한 미술학도들이었다.

전쟁과 4·19, 5·16 후유증에 시달리던 1960년대는 화단에서도 구상과 추상의 논쟁이 극심하게 펼쳐지며 우리 미술의 정체성 찾기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대학에 갓 입학했던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 64학번 학생 70여 명도 그 같은 격랑을 피해갈 수 없었다. 보릿고개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서도 엄규명·음영일 등 비원파사실주의계와 박승범·전광영·차대덕 등 추상파들은 구상이냐 사실이냐를 놓고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50여 년 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안고 홍대 거리를 누볐던 64학번 미술학도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7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뭉쳤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금보성 아트센터(02-396-8744)에서는 ‘홍익대 64입학동기 르누보’ 전이 열린다. 70여 명의 동기 중 현역으로 활동 중인 21명의 원로화가들이 각기 작품을 한 점씩 내 갖는 합동 전시회다. 매년 한 번씩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 벌써 16회째다.

전시회 타이틀 중에 르누보는 프랑스어 ‘renouveau’에서 나온 말로 ‘부활’을 의미한다.

홍익대 64학번 서양화과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임명택 화백은 “우리 동기에 개성 있고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은 덕분인지 작품 활동을 다른 기수에 비해 왕성하게 하고 있다”며 “그림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가지고 꾸준히 이처럼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작품활동을 포기한 이들이 동기의 반수 이상이지만 나머지 30여 명은 추상, 구상 등 각기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우리 화단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음영일 화백은 사실주의 그림으로, 박승범 화백은 앵포르멜 추상 2세대로, 이종승 화백은 추상표현주의로, 차대덕 화백은 극사실주의 분야에서, 신학철 화백은 민중미술 분야에서 우리 화단을 이끌었다. 특히 최근에는 동기 중에서 전광영 화백이 한지 입체회화인 ‘집합’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전시에선 그외에도 고영우·노영애·민정숙·박승범·배정자·엄규명·윤의웅·이명희·임동식·정계옥·정규련·정찬경·허황·황효창 화백 등이 작품을 선보인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이제 그림이란 무엇일까. 10대 후반 캔버스 앞에 앉았을 때와 지금의 심정은 어떻게 다를까. 이번 전시회에 ‘4월 또 오다’란 사실주의 계열 풍경화 한 점을 선보이는 정석진 화백은 그 같은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두려워요. 창작이란 것이 그렇잖아요. 그래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여럿이 가면 멀리 간다’는 말도 있죠? 나이먹어가면서 큰 의지가 돼요. 이렇게 동기 합동전으로 열정도 살릴 수 있고요. 나이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는 마라톤에서 완주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요.”

이경택 기자 kt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