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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er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2일(水)
“이승연 메이크업 하다 잘려… 오기 치밀어 방송국 찾아가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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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후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치열한 노력을 해 정상에 오른 정샘물 원장은 “어떤 일이든 의미를 두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생의 반전을 맛봤고, 성공도 이뤘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스크랩북처럼 해준다 설득하니
재취업에 “잘하는 애”소문내줘
고소영·김희선 맡으며 유명세

엄마처럼 畵家 될 줄 알았는데
아빠 사업 실패로 차선책 선택
‘투명 메이크업’으로 정상 우뚝

여섯살·돌쟁이 두딸 모두 입양
우리는 가족되기를 선택했을뿐
특별하고 유난스럽지 않게 살것

유튜브에 11년째 화장법 업로드
타임誌서 온라인 스쿨 제안받아
亞대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


5개의 헤어·메이크업 숍 운영, 아카데미 원장, 그리고 화장품 사업과 방송 출연까지. 정샘물(48) 아트앤아카데미 원장은 이처럼 다양한 일을 펼치며 국내 최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방송에 나와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유명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화려한 삶을 사는 그를 보면 ‘금수저’일 거란 생각이 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유학하고 돌아와 사업을 키우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치열한 노력을 통해 자신이 지닌 장점을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이름에서부터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열정이 느껴지는 정샘물 원장이 어떤 노력을 통해 성공을 이뤘고, 정상에 서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직접 들어보기 위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정샘물 플롭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2015년에 설립한 화장품 업체 정샘물뷰티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인 이곳에는 눈이 가는 곳마다 ‘JUNG SAEM MOOL’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그의 ‘궁전’에 들어선 듯 위압감이 느껴지며 그가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소녀 같은 순수한 표정과 소탈한 모습의 그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에게 “어떤 계기로 메이크업을 하게 됐느냐”고 첫 질문을 던지자 “어린 시절 불안정한 상황에 휩쓸리며 내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는 서양화가였어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오셨죠. 집에 유명 화가의 화집이 즐비했어요. 렘브란트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그림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중학생 때까지 학교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저도 당연히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도전은 아예 상상도 안 했죠.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되며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어요. 고등학생 때는 직접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상황까지 됐고요. 그러면서 너무 빨리 철이 들었고, 세상을 알게 됐어요.”

고등학생 때 연세대 공대에서 우편물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한 그는 그 시기가 자신이 살아갈 방향을 뾰족하게 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힘든 상황에 처하며 고민도 많았어요. 제 부모님은 인격이 훌륭하신 분들인데 경제적 이유 때문에 그런 고귀함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자식들까지 험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하지만 교회에 다니며 그런 고민을 건강하게 풀 수 있었어요. 저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시는 금발머리 할머니 선교사님을 보며 ‘저분도 외로울 텐데 부모님이 못 해주는 것까지 챙겨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저도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고요. 등록금 마련하는 게 간절했지만 멋진 대학생들을 보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가 연세대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때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인 1987년이다. 학생들은 매일 시위를 했고, 고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것도 그때다.

“제 앞에 최루탄이 떨어져 기절한 채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치열하게 싸우고 대립하는 걸 보며 어떤 생존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했어요. 제가 관찰력이 좋은 편이에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제가 변하지 않아도 환경이 바뀌면 주변 사람들이 변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또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면 제게 오는 상황도 바뀐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래서 제 가치를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저 자신을 잘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죠.”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고등학생 정샘물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찾았다고 한다.

“돈 안 들이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전할 수 있는 게 밝게 웃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표정부터 바꿨어요. 그러고는 바르게 걸으려고 노력했어요.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도 연습했고요. 꽤 효과적이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더군요. 공중화장실을 정리하고, 길거리에서 휴지와 담배꽁초를 주웠어요. 그러면서 저 자신을 칭찬해주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줬어요. 그렇게 당당해지고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화가를 꿈꾸던 그는 차선책으로 그림 그리기와 가장 가까운 일을 찾았다. 그렇게 메이크업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메이크업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은 없었지만 화장품 회사에서 연 아카데미가 있었어요. 전문가 과정을 듣고 싶었는데 수강료가 없었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어머니 미대 동창분이 제 사정 얘기를 듣고 수강료를 내주셨어요. 그렇게 제 인생의 반전이 찾아왔죠. 어떤 일이든 의미를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퐁뇌프 다리는 가보면 별게 아니거든요. 제가 보기엔 한강 다리보다 못해요. 근데 ‘연인의 다리’라는 의미를 부여하니까 전 세계 연인들이 몰려들잖아요. 인생도 그렇게 의미를 심어주면 삶이 빛나게 되죠.”

그렇게 메이크업을 배운 그는 배우 이승연의 메이크업을 맡게 됐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잘리게 됐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따로 없었어요. 그냥 가수나 배우들 따라 다니며 화장 고쳐주는 역할이었어요. 그때 제 기량이 출중했겠어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한 거죠. 이승연 씨와 처음 일을 했는데 한 작품 끝나고 나니까 좀 쉬겠다고 하더라고요. 배우가 쉬면 저도 쉬어야 돼서 막막했어요. 적은 돈을 받았지만 그것마저 못 벌면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근데 TV에서 보니 이승연 씨가 쇼 진행을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잘렸다는 걸 알았어요. 오기가 났어요.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서 다양한 메이크업 사진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들었고, 그걸 들고 방송국으로 달려갔어요. 심장이 뛰고, 손발이 얼음장이 될 정도로 떨렸지만 당당하게 앞으로 이렇게 메이크업을 해주겠다고 브리핑을 했어요. 왜 잘랐느냐고 묻지는 않았고요. 제 얘기를 들은 후 이승연 씨가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재취업이 된 거죠. 그때부터 승연 언니가 제 매니저 역할을 해줬어요. 고소영, 김희선, 김지호 등 스타들에게 ‘얘 되게 잘해’라고 저를 소개했어요. 그렇게 톱스타들의 메이크업을 해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거죠.”

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투명 메이크업’ 때문이다. 정 원장에게 “화장을 안 한 듯 눈속임을 하는 화장법이냐”고 어설픈 질문을 던지자 그는 “나는 나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화장법”이라고 설명했다.

“한 겹만 얇게 바르는 게 투명 메이크업이 아니에요.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피부색을 왜곡하지 않고 한껏 살려주는 거죠. 잡티나 주름을 가리는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찾아주는 거예요. 덕지덕지 바르는 메이크업이 오히려 쉬워요. 투명 메이크업에는 제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자신이 지닌 경쟁력에 집중할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나온다는 철학이요. 투명 메이크업으로 한순간에 유명해지며 정상이 보이더군요.”

연예계에서 일하며 매니저들과도 자주 만났고, 그러다가 남편과 인연이 닿았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사업을 확장해 지금의 결실을 얻었다.

“남편은 배용준·박상아 씨 소속사 대표였어요. 박상아 씨 메이크업을 해줬더니 제 덕에 광고 계약이 늘어났다고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해왔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 ‘사귀자’고 하더라고요. 부담스러워서 전화번호를 바꾸고 3개월 동안 외국에 나가 있었어요. 난리가 났죠. 돌아와서 만났는데 제가 몹쓸 인간이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설명을 했어요. 지금 한창 일이 잘되고 있어서 연애할 여유가 없다. 당신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다. 잘못했다. 사과했더니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또 ‘사귀자’고 해서 바로 결혼했어요(웃음). 남편을 못 만났으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거예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죠(웃음).”

부부는 슬하에 딸 둘을 뒀다. 여섯 살과 돌이 갓 지난 두 아이는 모두 입양을 했다.

“서른여섯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어요.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순수 미술을 전공했죠. 미국 가기 전부터 해외 아이 20명을 11년 동안 후원했어요. 귀국 후 제가 어린 시절에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따뜻한 도움을 떠올렸어요. 그러고는 남편과 의논해 입양을 결정했어요. 시어머니도 좋다고 하셨고요. 남편과 저는 삶의 1순위가 아이들이에요. 그다음이 일이죠. 남편이 아이들을 완벽하게 보살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정 원장은 입양 얘기를 꺼내며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입양 가족은 아주 특별하고, 멋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써놓은 입양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큰아이가 요즘 인터넷에서 엄마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한다며 이 글을 아이도 읽고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한 형태이다. 누구나 각자가 생각하는 특별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계획한다. 그렇게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면서 가족의 문화를 만들고 계승해 나간다.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되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누구나 있다. 우리의 시작과 결말은 다 다르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동정하거나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더 특별하고 유난스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함부로 판단하거나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김태희, 이효리 등 스타들과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 그는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밝혔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요. 먹는 것을 절제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죠. 제게 좋은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에요. 좋은 연기를 위해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을 보며 저도 책을 읽게 됐어요. 제 삶의 멘토 같은 친구들이죠.”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고, 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 11년째 메이크업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남편의 제안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자리가 잡혔죠. 얼마 전에 타임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메이크업 스쿨을 만들자는 제안이 왔어요. 이제 아시아 대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뎌야죠.”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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