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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3일(木)
디지털 여론조작과 衆愚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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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드루킹 재판이 시작됐다. 매크로(동일작업 반복 프로그램)로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네이버는 제휴 언론사 124개 사에 아웃링크로 전환해 기사 전재료를 포기할지 알려달라고 최근 통보했다. 이번 사건은 업무방해 단죄나 인링크 개선에 그쳐선 안 된다. 공공재인 뉴스에 실시간 검색어, 댓글로 순위를 매기고 ‘좋아요’ ‘화나요’ 아이콘까지 동원해 장사에 나선 포털 등 IT 플랫폼 기업의 관리책임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대의정치를 보완하기 위해 활발하게 도입 중인 디지털 민주주의의 민의 수렴장치도 신중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드루킹은 164개의 ID(사용자 이름)로 댓글 작성, 추천·공감 수 부풀리기를 하다 붙들렸다. 소수의 악의적인 사이버 의견 몰아가기가 전체 국민의 건전한 여론 형성 과정인 것처럼 포장됐다. 댓글 분석업체 워드미터에 따르면 네이버의 하루 뉴스 이용자 1300만 명 중 댓글을 쓴 ID는 11만 개, 10개 이상 쓴 ID는 전체의 0.046%인 6000개에 그쳤다. 실제로 1명에게 3개의 ID를 허용하니까 2000명이 대다수 댓글을 작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개당 몇천 원에 ID를 사고판다는 광고가 넘치는 현실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ID를 만들고, 남의 ID를 몰래 훔치는 등 가명·차명·도명 의혹도 짙다. 단적으로 1000만 명의 의견을 1000명이 멋대로 조작·왜곡할 위험성이 있다는 얘기다.

아날로그 시대에도 여론 조작은 있었다. 출판계의 책 사재기는 상업적 사례다. 정치판에선 흑색선전, 버스동원이 난무했다. 매스미디어를 입맛대로 조종하려고 촌지 세례와 광고 탄압을 퍼부었다. 정권마다 방송 장악에 골몰했다. 주류 언론을 못 믿게 된 대중은 인터넷과 SNS로 여론의 직거래 시장을 구현하려 맞섰다. 정부도 청와대 국민청원 등 중간 여과 과정을 생략하고 국민 의견을 현장 수렴하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여론 조작이 더 쉽고 강력해진 디지털 민주주의의 한계가 이번에 또 한 번 드러났다. 사이버 공간상 게시판이나 토론방, 댓글 등이 특정 의도를 품은 소수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는 학습효과다. 국정원 댓글 부대 같은 국가기관에 이어, 자발적 지지자 모습을 한 민간 알바단도 민주주의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이제 사람들은 ‘기레기’ 제도권 언론뿐 아니라 선량한 일반 시민들의 참여라고 알던 사이버 여론도 믿지 못하게 됐다. 아날로그 시대의 대의 민주주의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대리인 실패로 추락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직접 민주주의 실험 역시 ‘가짜 대표성’ 문제에 부딪힐 수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 자기 의사를 외부로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을 통해 걸러진 공론 혹은 건전한 여론 형성이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리 작동에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민주국가에 대한 헌법적 도전이다. 드루킹 사건은 심각한 경고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역기능을 조기에 치유하지 못하면 중우(衆愚)정치로 흐르게 된다.

nosr@
e-mail 노성열 기자 / 경제산업부 / 부장 노성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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