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골프에세이>마스크 착용 못하는 골프장 캐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하늘 사랑 가끔 외로울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눈 위로 떨어질 거예요. 그대의 슬픔은 어느덧 꽃으로 가득해진답니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봄꽃이 피고 난 뒤 모처럼 필드에 나갔다. 오랜만에 자연에 나오니 빌딩 숲과 사무실 공간에 갇혀 있던 마음이 뻥 뚫린다. 바람은 상큼하게 불고 살랑이며 흔들리는 여린 잎, 지는 꽃잎이 마치 삐라처럼 그린에 내려앉으니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하다.

양팔을 벌리고 걷다가 캐디에게 한마디 건넸다. “모처럼 나오니 좋네요.” “다들 그렇게 말하세요. 그래서 골프장이 좋다고들 하시는데….” 하지만 캐디는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요즘 일하면서 고충이 뭐예요?”라고 묻자 주저 없이 “우리 캐디들도 마스크 쓰고 싶어요”라고 대꾸했다.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 예의가 아니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골프장엔 골퍼만 있지 캐디,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 병풍 뒤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발암물질 1급인 미세먼지와 황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골프장을 찾는 고객들은 기능성 마스크를 챙겨와 쓰고 라운드한다. 미처 챙겨 오지 못한 고객에겐 골프장이 준비한 1회용 마스크가 지급된다. 하지만 캐디,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A 골프장은 캐디와 직원도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게 허용했다. 그랬더니 한 회원이 “건방지다. 서비스 자세가 아니다”라고 불만을 쏟았단다. 캐디와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하는 건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스크를 쓰고 코스에서 말을 하면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요즘엔 기능성 마스크가 많이 제작돼 말을 주고받는 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춘천에 산다는 한 남성은 부인이 캐디로 일한다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달라고 청와대 국민소통광장에 국민청원까지 올렸다. 국민청원까지 갈 일은 아니다. 캐디와 골프장 직원도 다 같은 사람이고, 건강을 지켜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고 가르치라”는 글이 있다. 대접을 받아본 직원이 고객을 대접할 줄 아는 것이다. 직원이 만족해야 질 좋은 서비스가 나온다.

그동안 골프장에서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시대가 변했다. 내 건강이 중요하듯 캐디의 건강도 중요하다. 21세기의 진정한 서비스란 쌍방향 소통이다.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의 소통에 의해 서비스가 구현된다. 미세먼지와 같은 1급 발암물질은 고객에게도 1급이며 캐디와 직원에게도 1급이다. 캐디·직원이 건강하면 고객은 건강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골프장에 핀 꽃과 향기가 고객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골프는 핀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는 유일한 스포츠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