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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8일(火)
졸업후 방황하는 청년-인생이 무료한 중년 여성 ‘위험한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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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졸업은 보람되고 설레는 성취의 정점일까. 아니면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시간의 서막일까.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1967년 작 ‘졸업’(사진)의 주인공 벤자민(더스틴 호프먼)의 졸업은 후자에 가깝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스물한 살의 벤자민은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없는 무기력한 청춘이다. 유복한 아버지 덕에 좋은 집에서 일광욕을 하며 망상에 빠지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졸업 후 뭘 하며 살겠냐고 물어대는 부모와 이웃들 덕에 저택의 수영장은 인생으로부터 잠수하고 싶을 때 향하는 도피처일 뿐이다.

그런 벤자민에게 아버지 사업 파트너의 부인인 로빈슨(앤 밴크로프트)이 추파를 던진다. 로빈슨은 벤자민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그를 보고는 벤자민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며 차 열쇠를 쥐여준다. 집 앞에 내려주고도 여자의 유혹은 집요하게 계속된다. 도망치려는 벤자민을 잡고 로빈슨 부인은 굳이 집 안으로 데려가 술을 권하고 침실로 데려간다.

끝까지 거부하는 벤자민 앞에 로빈슨 부인은 옷을 벗고 알몸으로 나타난다. 벤자민은 자신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매력적인 중년 여자의 유혹에 결국 무너지려는 순간, 로빈슨 부인의 남편이 귀가하고 벤자민은 도망치듯 방을 떠난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강렬하다. 1960년대 전후 미국 사회, 특히 중산층의 고질적 허울과 이에 대한 풍자가 그대로 드러난다. 2차 세계대전 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이 향상되고 누구나 안정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지만 갑작스럽게 얻어진 윤택한 일상은 생존과 쟁취의 처절함을 잊게 했을 것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젊은 남자와, 역시 좋은 교육을 받고 유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왔던 중년 여자의 성적 이끌림은 풍족과 나태의 교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의 남편 덕(?)에 무사히 첫 번째 유혹을 넘겼지만 “언제든 생각나면 연락하라”는 로빈슨 부인의 마지막 말을 잊지 못하고 호텔로 그를 불러낸다. 단숨에 달려온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 품에 안기고 싶어 주체를 못한다. 로빈슨 부인은 대화를 하고 싶다는 벤자민의 말을 자르며 크리스마스 포장지를 풀어헤치듯 벤자민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메마른 몸을 밀어 넣는다. 키스도 대화도 없는 공허한 섹스가 끝나고 벤자민은 끝도 없는 자괴감에, 그럼에도 자꾸만 헤아려지는 다음 만남에 괴롭고 슬프다.

이후 로빈슨 부인은 틈만 나면 벤자민을 불러내고 벤자민도 거절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일상에 그나마 조금은 내키는 일이 생긴 것이다. 후회와 죄의식으로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냐”는 부모의 심문은 또다시 탄식뿐인 로빈슨 부인과의 섹스를 찾게 만든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자기 혐오와 자위의 일상은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캐서린 로스)이 방학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중단된다. 의욕과 생기로 가득한 대학생 일레인의 등장은 어쩌면 벤자민의 방황을 ‘졸업’시켜 줄 구원이자 숙명일 것이다. 딸을 멀리하라는 로빈슨 부인의 질투와 협박으로 멀리하려 했지만 일레인과 있는 시간이면 벤자민은 오감(五感)이 기립하는 듯한 에너지가 넘친다. 일레인도 뭔가 불안해 보이는 벤자민과의 동행이 싫지 않다. 학교로, 기숙사로 밤낮을 따라다니는 그의 처절함은 결국 엄마와의 밀회까지 알고 있던 일레인의 마음을 돌리게 한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가 흐르는 이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그래서 더 뭉클하다. 며칠에 한 번씩 누리는 오르가슴으로 연명해 오던 벤자민이 처음으로 자아의 태동을 느낀 것이다.

벤자민의 부활은 나태와 관성의 ‘졸업’이자 생기 넘치는 세대교체의 서막을 그린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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