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TV세상>‘전참시’로 다시 뜨는 이영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송인 이영자가 ‘먹방 끝판왕’으로 떴다.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과 매니저의 생활을 관찰하는 리얼 예능이다. 원래 이영자는 여러 출연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영자의 존재감이 프로그램 전체를 압도했다. 20세기 말 톱스타였던 이영자는 21세기 들어선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영자가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트렌드의 한가운데에 섰다.

비결은 ‘먹방’이다. 이영자는 매니저에게 끊임없이 음식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사오라고 한다. 사온 음식을 이영자와 매니저가 나눠 먹는다. 이 모습에 한국인이 빠져들었다. 먹방 열풍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연예인이 먹방으로 사랑받았다. 이영자도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연예인인데 이상하게 그간의 먹방열풍에서 소외됐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원래 음식 프로그램도 아니고 전혀 그럴 의도도 없었겠지만 이영자를 관찰 카메라 앞에 소환하는 순간 이영자 먹방의 봉인을 푼 셈이 됐다. 이영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으로 폭주했고 순식간에 이슈를 장악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먹방 끝판왕의 등판이다.

이영자에겐 오랜 기간 축적된 내공, 데이터가 있다.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이영자가 데뷔 이후 27년간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직접 쌓은 정보들이다. 그것이 이영자 메뉴 노트로 집대성됐는데,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터진 것이다. 시청자가 여기에서 느끼는 건 진정성이다. 방송용으로 맛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이영자가 정말 맛있게 느껴서 노트로까지 만든 음식들이다. 과장된 TV 속 음식평에 불신을 느꼈던 시청자들에게 이영자의 진솔한 정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진정으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지는 이영자의 음식 평도 화제였다. “우리는 한 번 본 사람은 잊어도 한 번 먹은 음식은 못 잊지” “첫입은 설레고 마지막 먹을 때는 그립고” (한입 먹으면)“아~ 세상은 살 만하구나” 이런 평과 함께 ‘푸우욱’ ‘쏴아악’ 등의 의성어가 곁들여져 군침이 돌게 했다. 이영자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시청자도 행복하게 했다. 설정이 아닌 진정성의 힘이다.

이영자는 고급 음식을 소개하지 않는다. 국밥, 떡꼬치, 만두, 국수 등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서민의 언어로 전한다. 이것이 공감을 주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정보로 기능한다. 셰프의 이탈리아 음식 소개는 내가 언제 먹으러 갈지 모르지만, 만두는 오늘 당장에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영자가 전해주는 것이 더 실질적인 정보인 것이다. 그래서 더 재밌고 집중하게 된다. 대중이 이영자의 추천에 움직이면서 이영자 신드롬이 외식계까지 뒤흔든다.

일상 속 서민의 미식과 대식의 결합이다. 친근한 미식은 생활정보가 되고 통쾌한 대식은 대리만족의 쾌감을 준다. 휴게소마다 들르며 국밥, 오징어, 호두과자, 소떡소떡, 우동, 빵 등을 먹어치우다 두부 두루치기집에서 밥과 국수를 먹으며 ‘이제야 제대로 한 끼 먹었다’고 하는 이영자의 대식에 매니저와 시청자가 함께 혀를 내두른다. 매니저와 이영자 사이의 은근한 불협화음, 음식에 극히 민감한 이영자로 인해 형성되는 긴장감 등도 재미 포인트다. 바야흐로 전문 콘텐츠가 뜨는 시대다. ‘미식적 대식’으로 평생 살아온 이영자의 음식 전문성이 먹방 끝판왕으로 빛을 발한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