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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08일(火)
순진한 군축의 참혹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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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정치부 차장

국가는 내부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군대라는 두 개의 조직을 통해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 그 밖의 조직이 폭력을 사용할 경우 내부인은 범죄자로, 외부인은 침략자로 규정돼 각각 경찰과 군대의 반격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경찰과 군대라는 조직이 약해지면 국가는 사회 혼란과 외적 침입을 허용하게 된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현재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이 때문에 각국은 경찰과 군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려 애쓴다. 특히, 군대 유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올해 국방예산에 43조1581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비용이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양 정상은 ‘단계적 군축’에 합의했다. 군축이 시작되면 40조 원이 넘는 국방예산 중 일부를 국민 복지 등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군축 소식에 일부 네티즌은 군 복무 기간 단축 등에 대한 기대감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남북한의 군사력이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점이다. 2016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우리 군 병력은 62만5000명인 데 반해 북한군은 128만 명이다. 우리 군은 전차 2400대, 다연장·방사포 200문, 야포 5700문을 갖춘 반면, 북한군은 전차 4300대, 다연장·방사포 5500문, 야포 8600문을 보유하고 있다. 전투함정은 110척 대 430척, 상륙함정은 10척 대 250척, 잠수함정은 10척 대 70척, 전투기는 410대 대 810대 등 대부분 북한군이 우위에 있다. 여기에 북한군은 우리 군에 없는 20∼30기(추정)의 핵탄두와 2500t이 넘는 화학무기 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3축 체계(킬 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 체계)를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방위사업청은 3축 체계 조기구축 예산 3조8119억 원 중 3789억 원을 미집행해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 남북 대화 분위기에 휩쓸려 섣불리 군축에 들어갈 경우 남북한 군사력 차이가 더욱 벌어지거나, 3축 체계 구축이 더욱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은 1만 개에 가까운 지하터널을 갖추고 있어 군축이 제대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검증도 어렵다.

군축 검증의 어려움과 실패의 참혹함은 역사가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5개국은 워싱턴 군축회의(1921년 11월∼1922년 2월)를 통해 각국의 주력함(전함) 건조 비율(t 기준)을 각각 5 : 5 : 3 : 1.67 : 1.67로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에 불만을 품은 일본이 합의 대상에 빠져 있던 보조함(순양함) 증강에 나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5개국은 다시 런던 군축회의(1930년 1∼4월)에서 보조함 건조 비율에 합의했지만, 또다시 일본은 경순양함과 중순양함 구분이 주포 구경에 따라 결정되는 허점을 이용해 중순양함을 늘려나갔다. 이로 인해 발생한 군사력 불균형은 훗날 일본이 미국에 대한 승리를 자신하고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배경이 됐다. 냉정함과 투철함 없는 군축은 그 과오의 대가를 피와 살로 받아간다.

suk@
e-mail 김석 기자 / 국제부 / 차장 김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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