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 PVID에 맞서는 北·中…文정부가 거드는 일 없어야

미·북 정상회담의 날짜·장소가 확정 단계에 접어들면서 관련국들의 움직임이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북핵 폐기를 위한 ‘디테일 협상’이 심각하고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겉보기에 상황이 복잡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은 분명하다. 미국은 신속한 ‘영구적 핵폐기’(PVID)로 입장을 강화했고, 북한과 중국은 이런 미국 입장에 맞서 ‘단계적 폐기’에 더 집착하고 있다.

우선, 애매한 여지를 남겨 두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장은 더 선명해졌다. 미국은 8일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했는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시그널을 북한에 보낸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마러라고 정상회담 직전에도 시리아 공군기지를 폭격함으로써 북·중에 유사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40일 만에 재방북하면서 “과거에 갔던 길을 가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 석방을 위한 방북으로 보이지만, 이런 분명한 입장을 다시 전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일 것이다.

북한과 중국 전략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7∼8일 중국 다롄서 만나 혈맹 복원을 재확인했다.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동참으로 멀어졌던 관계를 원상 회복시킨 셈이다. 김정은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로 이어졌다”면서 “최종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고 함으로써 비핵화가 마지막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시 주석도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이자 순치(脣齒)관계”라고 호응했다. 시 주석의 입장은 북·중 정상회담 뒤의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더 분명히 드러났다. 시 주석은 “미·중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관영 언론이 보도했다. ‘정치적 해결’은 원칙에 입각한 해결과 달리, 주고받기식 또는 양측 요구의 산술평균 등 PVID와는 거리가 멀다. 백악관이 “미·중 정상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영구 폐기할 때까지 제재를 지속키로 했다”고 밝힌 것과도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이다. 북핵 폐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중간 과정은 의미가 없다. 최종 목표에 집중하면서 북한과 중국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압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미·북 직접 대화가 성사된 만큼 이제 ‘중매자’ 역할은 필요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할 수도,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는 중대 국면이다. 문 정부가 북·중의 ‘뒷문 만들기’를 거들면 지금까지의 북핵 폐기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