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역동적인 캐릭터였어?… 원작으로 만나는 피터 래빗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피터 래빗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토끼’는 동화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캐릭터다. 수첩, 도시락, 수저, 컵, 수건까지 그동안 피터 토끼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았다. 작가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작품의 배경을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원작을 읽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특히 이 캐릭터를 사랑하는 성인 독자들은 대부분 피터가 어떤 성격의 토끼인지, 무슨 이야기인지조차 모른다.

이번에 ‘피터 래빗 전집’이 새로운 번역과 판형으로 출간되면서 1902년에 출간된 이 흥미로운 고전이 독자를 다시 만날 기회를 갖게 됐다. 2003년에 신지식·김서정 번역으로 프뢰벨에서 출간되었던 피터 래빗 전집은 23권으로 가로 약 10㎝, 세로 13.5㎝의 원본 판형이었다. 존대어를 사용한 부드러운 번역이었고, 어린이들이 들고 읽기 좋은 크기로 책을 만들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잘 재현한 전집이었지만 소장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했다.

15년 만에 민음사에서 황소연의 번역으로 다시 나온 이 전집은 추가 네 편을 포함한 27편을 완역하여 한 권의 양장본에 담았고 평어를 사용했다. 그동안 이 이야기를 궁금하게 생각했던 성인 독자와 다양한 연령의 가족 독자들을 배려한 대중적인 판본이지만 지면의 크기를 조정해 원본의 느낌에 가깝게 구성했다.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에 태어나 1943년에 세상을 떠난 식물학자이자 농부이며 환경운동가다. 그가 발표한 버섯 연구 논문은 영국린네협회가 인정했음에도 ‘여성이 쓴 논문’이라는 이유로 발표를 금지당했다. 성차별과 신분제가 공고한 사회에 가로막혔던 베아트릭스는 레이크디스트릭트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파괴적 개발을 저지하는 활동을 벌였다.

피터 래빗 이야기는 그가 키우던 ‘벤저민’과 ‘피터’라는 토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농장 속 야생동물들의 대서사다. 가정교사의 아픈 아들을 위해 쓴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 인세로 토지를 사들여 동물들의 서식지를 보존하려 했던 베아트릭스는 훗날 그 땅을 한 환경단체에 기증한다. 백 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환경운동 기구로 성장한 내셔널 트러스트의 처음 맥박을 뛰게 해 줬던 것이 이 아름다운 고전이다.

작품 속 야생동물들은 의인화됐으나 환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며 맹렬하게 자신의 삶을 산다.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역동적인 그들의 모습은 조용한 저항으로 세계를 바꿔놓았던 작가 자신의 삶과 닮았다. 혼자 읽기에도, 가족이 나란히 읽기에도 좋은 영원한 고전을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 720쪽, 2만2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