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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Fifty+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1일(金)
‘딴짓’하기 딱 좋은 나이 50代… 방전된 삶, 다시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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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그룹 2NE1의 리더였던 씨엘(왼쪽)과 부친인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지난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인 부녀는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들만의 독창적 세계를 창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기진 교수 제공

‘씨엘 아빠’ 이기진 서강대 교수

“하고싶은 일에 집중하니
살아있다는 기분 느껴져

가수인 딸 씨엘 인생 존중
우린 서로 배우고 영향줘
‘딴짓’, 제 삶의 탈출구죠”

“연재 에세이 ‘연애실험실’
20∼30대서 뜨거운 반응

그림 그리고 골동품 수집
그 시대 생활상이 오롯이
현재 나에겐 색다른 행복”


“50대가 딴짓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니냐고요? 50대는 본격적으로 딴짓을 시작할 나이죠!”

아이돌그룹 2NE1의 ‘씨엘(CL) 아빠’로도 유명한 이기진(58)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딴짓의 고수’다. 그의 딴짓은 꽤 범위가 넓다. 동화책도 쓰고, 틈나는 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골동품도 모으는데 특히 주전자와 냄비 수집에 관심이 많다. 딴짓을 위한 별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울 종로구 창성동엔 한옥 ‘실험실’을 마련했다. 최근엔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글을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말 쉬지 않고 20대부터 40대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50대로 접어든 어느 날 인생을 돌아보니 방전되기 직전이었다”며 “더는 하고 싶은 일들을 미뤄선 안 되겠다는 결심에 딴짓의 세계에 입문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제 인생과 일을 어느 정도 관조할 수 있는 50대가 본격적으로 딴짓을 시작하기 좋은 때”라며 “세상을 뒤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 보면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화폭, 붓, 물감 같은 거창한 도구는 필요 없다. 그림을 그릴 스케치북과 펜만 있으면 된다. 스케치북이 없으면 이면지나 편지봉투가 캔버스가 된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끄적끄적’ 그리는 일로 작업은 마무리된다.

“어느 날 출근길에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홍대에 가서 스케치북과 펜을 샀어요. 바쁜 일상 속에서 갑자기 그림 그릴 시간이 있을지 걱정했는데, 인생이 더 바빠지지도 않고 세상은 똑같더라고요.”

그의 그림은 낙서처럼 ‘대충’ 그려진 것 같기도 하지만 내용은 인생을 ‘시니컬’하게 관조하는 철학이 담겼다. 최근엔 그림들이 독창성을 인정받아 기업이 후원하는 전시회도 열었다.

“틈날 때마다 딴짓하며 그려놓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그림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제 생각과 감정을 담은 그림이라 좋았어요. 전시해 놓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 많이 뿌듯했습니다.”

이 교수는 골동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 주전자, 그릇, 냄비에 관심이 많다. “국내든 해외든 가리지 않고 골동품을 모아요. 오래된 골동품을 보면 ‘이 물건은 대체 뭘까, 이 물건을 사용했을 사람은 누굴까’라고 떠올립니다. 그 사람이 있던 시공간과 만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골동품은 제게 책과 비슷한 느낌을 줘요.”

그는 인터뷰 중에도 주전자를 들어 보이며 “하나하나 생긴 모양이 참 신기하고 재밌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골동품들을 지그시 바라볼 때면 그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이 교수는 딴짓에 집중하기 위해 연구실과 집을 벗어나 ‘창성동 실험실’이라는 공간도 마련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로망’을 갖고 꿈꿔온 한옥이다.

“2000년대 초 슬럼가였던 창성동에 있는 한옥을 헐값에 장만했어요. 물론 지금은 일대가 개발되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는데, 딴짓하고 싶을 때면 실험실에 갑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시용 공간을 빌려주고,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면 정말 재밌어요. 일과 별개로 무언가 실험하기엔 제격이죠.”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기진 교수의 연애실험실’ 연재 에세이는 온라인에서 반응이 뜨겁다. 주 독자층은 20∼30대인데 그는 젊은 층과 사랑에 대해 논하며 스스로 배우는 점이 많다고 한다. 특히 ‘삶의 가장 좋은 선생님은 연애’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 펜을 잡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댓글을 보며 젊은 사람들이 연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볼 수 있어 좋아요. 종종 비판 댓글이 달려도 연연하진 않지만, 얼마 전 ‘헤어진 연인을 쿨하게 놓아주고 뒤에선 욕하면 안 된다’는 제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물리학자’라고 달린 댓글을 보고는 조금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하.”

이 교수가 딴짓을 즐기면서도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본업에도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사실 그는 학계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물리학자다. 전공분야는 ‘마이크로파’다. 차세대 반도체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인공지능(AI) 기술에 반도체를 적용하면 열이 많이 발생하고 물리적으로 막대한 양의 반도체가 필요하므로 차세대 소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16년에는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세계적 권위의 국제 과학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논문을 게재했다. 학자로서 인정받은 성과에 관해 묻자 그는 “딸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겨 기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의 인터뷰에선 딸의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이 교수의 딸은 유명 아이돌그룹 2NE1의 ‘씨엘’(본명 이채린)이다. 딸이 요즘 미국에서 활동하느라 자주 보지는 못해도 SNS 메시지로 안부를 묻는다. 이 교수는 딸과 프랑스 파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두 사람이 각자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유로 “딸을 존중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물리학자니까 딸이 한 번은 무대효과로 사용할 마이크로파에 대해 조언을 구한 적은 있어요. 근데 지금은 딸은 딸대로 본인 분야에서 전문가고, 저는 제 분야의 전공학자이기 때문에 딸의 인생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고 영향을 주며 성장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에게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딴짓이 있는지 물었다.

“더 생각나는 딴짓은 없고 지금 생활이 유지되면 좋겠어요. 본업이 흔들리지 않고 제가 하고 있는 딴짓들이 꼬이지 않는 생활요.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 작은 술집에 들러 그림도 그리고 다트도 던지다가 마시는 맥주 한잔이 큰 행복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딴짓들은 제 탈출구이면서도 시간이 지나며 제 인생처럼 하나의 실체로 남는 것 같아요. 사랑도 그림도 글도 마찬가지고요. 반드시 어떤 거창한 목표가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삶의 기술’을 찾는 건 50대에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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