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자존심 구긴 ‘콘텐츠 공룡’… 콧대 낮추고 ‘현지화’로 재도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등을 온라인으로 공급하는 동영상 업체 넷플릭스(아래 왼쪽 사진)는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나 감독 등을 활용한 예능 ‘범인은 바로 너’(위)와 영화 ‘옥자’(아래 오른쪽) 등을 제작하며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 넷플릭스, 한국형 예능 제작 등 공격투자 왜

텃세 강한 한국 첫 진출 실패
LG유플러스와 제휴해 공략

마이웨이 대신 韓소비자 맞춰
예능 제작·드라마 공급 방침

제작비·출연료도 150% 제시
후발주자로서 물량 쏟아붓기

인터넷 완비 대중문화 강국
韓시장 성공땐 亞진출 발판

세계적인 동영상 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가 처음 제작한 한국 예능 ‘범인은 바로 너’(연출 조효진·김주형)가 지난 4일 베일을 벗었다. ‘국민 MC’라 불리는 방송인 유재석을 앞세운 이 프로그램은 사전제작시스템을 도입하고 추리와 예능을 결합했다는 차별점 때문에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 성과는 아무도 모른다. 넷플릭스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오리지널 예능과 드라마를 제작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 넷플릭스 관계자, 넷플릭스와 일한 이들을 통해 넷플릭스에 대한 궁금증을 짚어봤다.

◇톱스타, 작가, PD들은 왜 넷플릭스를 좇나? = 넷플릭스가 공급하는 콘텐츠는 전 세계 190개국 1억2500만 명의 가입자에게 동시 노출된다. 어느 나라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 중 하나의 국가에서라도 히트하면 단박에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몸값도 엄청나게 뛴다. 그러니 국내의 내로라하는 스타, 작가, PD들도 넷플릭스가 손을 내밀면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천문학적인 개런티를 준다? = 4월 초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372억 달러, 한화로 140조 원에 육박한다.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비는 미국·유럽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가 한국의 제작진에게 엄청난 물량을 쏟아붓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국내 전문가들을 다수 영입해 시장조사를 마쳤다. 무리한 제작비나 출연료를 쓰지 않고 적정선에서 합의를 도출한다. 하지만 국내 후발주자로서 이름값 높은 이들을 기용하기 위해 국내 작품에 비해 130~150%가량 높은 금액을 제시한다고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범인은 바로 너’를 연출한 김주형 PD는 “SBS 재직 시절 ‘런닝맨’을 연출하며 특집극을 만들 정도의 제작비를 매회 쓰고 있다”며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지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 ‘범인은 바로 너’가 방송된 후 다양한 평이 나왔지만 정작 성공 여부를 단정지을 기준은 없다. 시청률 집계도 안 되고, 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가입자가 얼마나 늘었는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공동 연출자인 조효진 PD는 “주변 반응은 좋지만 시청률 같은 지표가 없으니 답답하다”며 “제작자인 우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공 시그널은 차기 시즌 제작이다.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콘텐츠인 ‘하우스 오브 카드’는 2013년 첫선을 보인 후 벌써 6번째 시즌에 돌입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고, 가입자 증대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라면 넷플릭스는 기꺼이 더 좋은 조건으로 차기 시즌 제작을 의뢰한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 부인할 수 없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자국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충성도가 높아 ‘텃세가 강한’ 한국에서는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2016년 1월 론칭했지만 반응이 미미하자 그해 6월 리드 헤이스팅스 CEO가 서울을 찾아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는 ‘옥자’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가 될 것이고, ‘태양의 후예’를 서비스하겠다”고 한국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유화책을 내놨다.

넷플릭스는 한국 상륙 당시 국내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를 대량 확보하고 있는 통신사와 계약을 추진했으나 결렬됐다. 수익 배분 비율이 넷플릭스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적용돼 통신사들이 한국형 콘텐츠가 없는 넷플릭스와 손잡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마이웨이’를 택한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 공략이 영 신통치 않자 결국은 최근 LG유플러스와 제휴를 맺었다. 한국시장의 특수성과 자신들의 판단착오를 인정한 셈이다.

◇왜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 몰두하나? = 미국 비디오와 DVD 렌털 시장을 초토화한 넷플릭스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동영상을 서비스한다. 망(web)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정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반면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가 1위인 한국은 넷플릭스의 서비스에 최적화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한류를 기반으로 아시아 전역을 들끓게 만드는 스타와 콘텐츠를 배출하는 국가다. 웬만한 할리우드 스타를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는 한류스타와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넷플릭스가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궁극적 공략지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역시 한류 콘텐츠에 열광한다. 결국 넷플릭스는 전 아시아 시장으로 통하는 허브로서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