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거절 종일 진땀… 교사들 “차라리 ‘스승의 날’ 없애자”

  • 문화일보
  • 입력 2018-05-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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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조차 저촉 대상 포함”
김영란法 도입후 조심 분위기
학부모는 선물대신 ‘청소봉사’
靑게시판 ‘폐지-변경’ 목소리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 스승의 날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실제 게시판에 실린 스승의 날 관련 청원 50여 건 중 30건 이상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불편해진 스승의 날을 옮기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원을 올린 한 교사는 “유래도 불분명하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없앴다가 만들기도 한 스승의 날에 정작 교사는 주체로 살아본 적이 없다”며 “카네이션조차 거절하면 학부모들로부터 ‘유난 떤다’는 소릴 듣고 안 좋은 여론만 높아지니 그저 하루가 고통스럽지 않게 스승의 날을 없애달라”고 주장했다.

김영란법 이후 매년 스승의 날(5월 15일)만 다가오면 현장 교사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학생의 작은 성의 표시를 거절하거나 받은 선물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빼면서 차라리 스승의 날이 없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불만과 원성이 나오는 형편이다. 서울 모 고교의 H(29) 교사는 지난주부터 학생, 학부모로부터 매일 ‘사절’ 답변을 하느라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 감사·안부 인사와 함께 “별거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고 드시라”며 선물이나 기프티콘을 보내겠다는 전화 때문이다.

H 교사는 “캔 커피, 과자 하나라도 김영란법 저촉 대상에 포함되니 스승의 날에 즈음해서는 더 조심스러워진다”며 “성의 표시가 필요하지도 않지만 불필요한 기념일로 오히려 교사들이 쉬지 못하고 거절 전화를 돌리느라 일만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 S(40) 교사는 학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와 당황스럽다고 했다. 몇몇 학부모들이 금전적으로 감사 표시를 할 수 없으니 청소나 환경미화를 돕겠다고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현장 교사들 사이에선 이 때문에 도입 취지가 퇴색한 스승의 날을 차라리 옮기거나 폐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비등해지고 있다.

1965년 처음 제정된 스승의 날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탄신일로, ‘우리 겨레의 가장 큰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인천의 모 중학교 K(52) 교사는 “학교라는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학년 단위로 운영되는데 스승에게 감사한다는 취지를 살리려면 1년간 가르침에 감사했다는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연말이나 2월로 바꾸는 게 낫다”며 “학생들을 본 지 두 달 만에 학생들 앞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듣기도 어색하다”고 말했다.

K 교사는 “감사편지를 쓰는 시간엔 학생들도 뭘 감사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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