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갑분싸’에요”… BJ 유행어에 교사들 곤혹

‘금지어 리스트’ 작성 배포도
무조건 막으면 소통단절 우려

“선생님, ‘갑분싸’가 뭔지 아세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는 뜻이지” “그러면 ‘갑분띠’는 뭐게요.”

지난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는 새 학기 교실에서 사용해서는 안 될 ‘금지어 리스트’를 제작해 교내에 배포했다. 학생자치 회의를 통해 결정된 금지어 목록에는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김치녀’와 한국 남성을 혐오하는 ‘한남충’ 등 혐오 신조어들과 함께 ‘갑분띠’(갑자기 분위기가 ‘띠용’한다는 뜻)와 같은 유명 인터넷 방송 진행자(BJ)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상당수 포함됐다.

최근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을 교실 내 금지어로 정해놓은 초·중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쓰지 말라는 금지어가 제각각이고 종류도 수십 개에 이르다 보니 ‘어떤 단어가 금지어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많은 학생이 유명 BJ가 진행하는 방송의 언어습관을 따라 하면서 이미 또래들 사이에서는 확고한 유행어로 자리 잡은 경우도 많다.

반면, 선생님과 학부모 대부분은 인터넷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보니 아이들과의 소통 단절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초·중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인터넷 방송의 유행어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많아 상대적으로 젊은 신입 교사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인터넷 방송 시청에 대한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요즘 시대에 ‘인터넷 방송을 아예 보지 말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고, 인터넷 방송이라고 전부 다 나쁜 것은 아닐 텐데 아이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고심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혐오·비하 발언이 아닌 이상 모든 단어를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반대로 충북 청주시의 초임 교사는 “퇴근 이후 아이들이 자주 본다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종종 시청한다”며 “나쁜 뜻이 없는 유행어를 골라 수업 때마다 가끔 사용하면 아이들의 집중도도 확 높아진다”고 말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어린 학생들이 사용하는 철없는 말이라고 외면하기만 한다면 자칫 교실 내에서 선생님과 학생 사이 소통의 단절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일정 부분 학생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