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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5일(火)
삶의 고독·악취도 직시하는 게 ‘예술적 초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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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고독과 익명성을 가장 잘 묘사한 에드워드 호퍼의 ‘자동 판매식 식당’. 완전한 격절에 대한 차갑고 냉정한 묘사는 우리에게 깊은 감흥을 일으킨다. 자료사진

■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17) 호퍼의 그림과 보들레르의 詩

사랑보다 근원적 감정 ‘고독’
도시라는 큰 공간에서 극대화
호퍼의 그림엔 등장인물 한 명
여럿이어도 서로 다른 곳 응시

보들레르가 묘사했던 도시는
“공동묘지보다 시체가 많은 곳”

오늘날 삶에서 낙원은 불가능
한계 지각하며 생기는 우울은
표현하면 할수록 달리 성찰돼
영원한 무엇으로의 도약 단계

여기서 포착되는 아름다움이
현실을 덜 추하게 만드는 듯


보편적 감정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사랑이나 박애, 동정이나 연민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고독일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계기는 거의 예외 없이 홀로인 채로 일어난다. 전환점으로서의 결정적 순간이 그러하고, 병이 들거나 죽어갈 때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같은 한계상황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 고독은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극대화된다. 1920∼1950년 사이에 활동한 화가들 가운데 인간의 고독과 익명성을 가장 잘 묘사한 대표적인 인물이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일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등장하는 인물이 많지 않다. 대개는 한 사람이 홀로인 채로 그냥 앉아 있거나 창밖을 쳐다본다. 아니면 같이 있더라도, 잘 알려진 ‘밤 올빼미’(Nighthawks·1942)가 보여주듯이, 서로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곳을 응시한다.

▲  에드워드 호퍼의 ‘밤 올빼미’. 편재하는 사람들의 고독을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시각화했다.

# 고독의 시각화

‘밤 올빼미’란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어느 카페의 밤 풍경을 담은 이 그림에는 네 사람이 나온다. 맨 왼편 사람은 중년의 남자로서 술병을 그 앞에 놓고 있다. 그의 오른쪽 앞으로는 두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은 차를 마시는 것 같다. 아니면 독주를 한두 잔 들이켜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 얘기를 나누진 않는다. 남자는 담배를 손가락에 낀 채 앞을 응시하고 여자는 손에 든 뭔가를 바라본다. 그것은 누구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손과 손은 닿아 있지만, 이런 접촉은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들에게 종업원이 고개를 들고 뭔가 말을 붙여보지만, 그들은 그의 말에 주의하는 것 같지 않다.

정면을 응시하는 남자의 모습은 음울해 보인다. 그렇듯이 등 돌린 왼편 남자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하다. 이 세 사람의 모습은, 마치 정지한 영화의 어떤 장면처럼 굳어 있다. 그것은 과도한 업무에서 오는 피로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호퍼 그림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은, 변호사든 의사든, 세일즈맨이든 매니저든, 이처럼 피폐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늦은 밤의 고적(孤寂)과 도시의 냉기 그리고 인간관계의 외로움이 묻어 있다. 그들이 음미하는 것은 이런 쓸쓸함인지도 모른다.

이 외로움은 그들이 앉은 카페가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배가되는 듯하다. 유리창에 의해 그림 속 인물들과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우리(관객) 사이도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림 속의 그들 고독은 그림 밖의 우리 고독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인간은 ‘고독 속에서만 어울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화가의 표현력은 이 편재하는 누구나의 고독을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시각화한 데서 올 것이다. 이것을 ‘도시적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도시의 빛과 그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도시이고, 이 도시는 거대하다. 이 도시적 삶이 늘 있어 왔던 것처럼 우리는 여기기 쉽지만, 그것은 사실 근대에 와서야 널리 퍼진 현상이다. 근대화가 산업화나 도시화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길게는 1750년부터, 짧게는 1850년을 전후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도시화는 편리만큼이나 온갖 병폐를 야기했다. 그러나 그 빛과 그늘을 동시에 포착한 감수성은 아주 드물었다. 보들레르(1821∼1867)는 그런 시인 중의 하나다. 그의 시는 유럽 근대 서정시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울(Spleen)’을 읽어보자.



내게는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들, 시의 원고와 연애편지, 소송 서류, 연가(戀歌)들,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타래로 가득 찬 서랍 달린 장롱도

내 서글픈 두뇌만큼 비밀을 감추지 못하리.

그것은 피라미드, 거대한 지하 매장소,

공동묘지보다 더 많은 시체를 간직하고 있는 곳.

- 나는 달빛마저 싫어하는 공동묘지,

거기 줄을 이은 구더기들은 회한처럼 우글거리며,

내 소중한 시체를 향해 늘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나는 또한 시든 장미꽃 가득한 오래된 규방,

거기 유행 지난 온갖 것들이 널려 있고,

탄식하는 파스텔 그림들과 빛바랜 부셰의 그림들만

마개 빠진 향수병 냄새를 맡고 있다.



이 시의 의미는 금방 포착되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하다. 이 음울함은 ‘소송서류’나 ‘지하 매장소’ ‘시체’와 ‘공동묘지’ 같은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미는 시들어 있고, ‘오래된 규방’에는 “유행 지난 온갖 것들이 널려 있”으며, ‘파스텔 그림’은 “탄식하”고, ‘부셰의 그림들’은 “빛바래” 있다. 여기에 ‘향수병’의 ‘마개’는 “빠져” 있다. 이것이 보들레르적 우울이다.

이 시적 화자를 보들레르라고 치면, 그는 ‘거대한 지하 매장소’와 같고, 이곳은 “공동묘지보다 더 많은 시체를 간직하고 있”다. “달빛마저 싫어하는” 그 ‘공동묘지’에서 “줄을 이은 구더기들은 회한처럼 우글거리며” 그의 “소중한 시체를 향해 늘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보들레르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우글대는 파리에서 삶의 거짓과 불안, 개인의 고독과 공포를 발견한다. 그런 점에서 화가 호퍼를 선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도시가 제공하는 편리와 쾌락 이상으로 그 추악을 드러내었고, 도시의 매음과 도박과 죽음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문명적 삶의 지옥 같은 배후를 명상하고 기록했다.


# 병든 꽃

시인 보들레르는 추하고 악하고 천하고 비루한 것들에 열려 있었다. 그는 지루하고 불쾌한 것을 경멸하면서도 찬미했고, 이해받지 못하는 데서 영광을 느꼈으며, 증오 속에서 즐거움을 끌어내었다. 이율배반 속에서 미의식이 움직인다고나 할까? 이런 내용의 혁신성은 고전적 틀을 파괴하고 도발적인 이미지의 균열을 보여주는 시적 형식의 혁신성에 상응한다. 그는 실제로 급진주의자에, 총을 들고 거리를 뛰어다니던 폭도이기도 했다. 그의 언어가 음산하고 불길하면서도 야유적이고 전복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시인의 이 혼돈스러운 자의식은 한 권뿐인 시집의 제목인 ‘악의 꽃’에서도 이미 암시된다. 어떻게 꽃이 선이 아니라 악의 꽃인가? 이 자체가 미와 도덕, 시와 문화의 전통에 대한 깊은 불신을 증거한다. 그는 ‘독자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나의 형제여!” 1857년 시집 발간 시 ‘공공도덕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6편의 시가 삭제되고 벌금형이 내려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때의 유죄판결은 1세기가 지난 1949년에 와서야 파기된다.

보들레르는 21세 때 아버지로부터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무절제한 지출로 곧 금치산 선고를 받았고, 그 후에는 법정 후견인의 허락 없이 자기 돈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재산이 있음에도 평생 가난과 빚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그는 대중의 우매함을 경멸했고, 지겹고 불쾌한 것을 견디지 못했으며, 그럴듯한 도덕적 교설을 혐오했다. ‘악의 꽃을 위한 서문 초고’(1860)에서 그는 썼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그르치지 않고, 아무것도 원치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잠자는 것, 오직 잠만 자는 것, 이것만이 오늘날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치사하고 메스꺼운 바람이지만, 진지한 바람이다.”

보들레르는 시시하고 국외적인 모든 존재에 열광했다. 그는 늙은 창녀나 병자, 광대나 노숙자의 삶에 공감했고, 사회의 낙오자나 패배자는 그의 친구였다. 그 역시 평생 가난과 질병, 불안정한 사랑과 정치에의 환멸 속에 시달린 까닭이다. 19세기 이후 현대 미학이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이 부정성은 바로 보들레르적 악의 미학에서 시작한다고 할 것이다. 시인의 이런 시각으로 다시 호퍼의 그림을 살펴보자.

‘밤 올빼미’가 도시의 고독을 먼발치에서 묘사한다면, ‘자동 판매식 식당’(The Automat·1927)은 좀 더 가까이에서 한 여인을 그린다. 그녀가 앉은 곳은 식당의 구석이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컵을 잡고, 왼손으로는 받침을 잡은 채, 탁자 너머를 멍하니 보고 있다. 그녀 맞은편 의자는 비어 있다. 온다고 했던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유리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앉거나 만지거나 사용하는 사물도 그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생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녀 뒤편에 놓인 주황색 과일바구니뿐이다. 그녀 뒤편으로 커다란 창문이 나 있고, 이 창은 어두운 밤 풍경을 보여준다. 이 큰 창유리에는 두 줄의 실내 전등이 반사된다. 밖의 풍경이란 되비친 안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호퍼의 인물들은, 실내건 실외건, 일하든 쉬든, 홀로건 함께건, 편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인가 하고 있지만, 하고 있는 이 일보다 어떤 다른 무엇을 바라거나 꿈꾸는 듯 보인다. 그들의 마음은 어디론가 향해 가지만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호퍼의 그림에서 우리가 감흥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완전한 격절에 대한 이처럼 차갑고 냉정한 묘사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도시적 우울과 환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보들레르에게 기대 보자.



# 술과 시와 덕(德)

보들레르는 더 이상 사랑이나 순수를 믿지 않았다. 그렇듯이 그는 미나 진실도 불신했다. 대신 그는 “취하라”고 했다. 어떤 것에? 그것은 ‘술’과 ‘시’와 ‘덕(德)’이었다. 그는 ‘파리의 우울’(1869)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자들의 영혼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그리고 세상의 허위와 썩은 공기로부터 멀게 해주소서. 그리고 당신이여,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 줄 아름다운 시를 몇 개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오늘날의 삶에서 낙원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어디서나 한계는, 그것도 어림할 수 없이 중층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과장 없이 지각하는 것, 바로 여기에서 우울이 생겨난다. 우울은 인간의 한계조건을 직시하는 명민한 자의식이다. 이 자의식으로 우리는 현대적 삶을 특징 짓는 온갖 음화적(陰畵的)인 것들 - 부패와 타락과 모순과 거짓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시는 이렇게 모순을 가로지르며 이 모순을 드러내는 표현활동이다. 이 표현 속에서 저열한 현실은 다시,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성찰된다. 겹겹의 모순은 이 성찰을 통해 조금씩 지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는 좀 더 나은 것 - 거짓 세상과 썩은 공기가 아닌 무엇으로 나아간다. 시는 이 상승적 갈망 속에서 타자적 지평을 추구한다. 그러나 시의 이런 시도도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 패배와 수치는 오늘날 불가피하다. 비미적 현실에서 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 불가능의 시도 속에서 예술은 어떤 무엇 - 무한하고 영원한 무엇으로의 도약을 기획한다. 아마도 이 꿈꿈의 매혹 덕분에 보들레르는 실어증에 반신불수의 막바지 생애도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내겐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고 그가 읊조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삶에는, 마치 구더기 떼가 시체에 달려들듯이, 악취와 치욕이 들러붙는다. 육체는 머잖아 말라빠지고, 배는 튀어나오며, 가슴은 처지고 만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더럽고 추하며 비루한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

▲  문광훈 충북대 교수
예술은 삶의 이 악취와 슬픔과 맹목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시하고, 나아가 표현한다. 시인 보들레르는, 화가 호퍼가 인간실존의 쓸쓸함을 드러내듯이, 병든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자 했다. 아니 오늘날의 미는 악에서만 가능함을 직시했다. 예술은 한계조건을 넘어서려는 초월적 시도다. 이 초월적 시도 속에서 포착된 아름다움은 현실을 덜 추하게 하고 시간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의 악취와 쾌락의 슬픔 그리고 열정의 눈멂도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일보 4월 17일자 22면 16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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