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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5일(火)
“시나리오 찢어 호텔 방에 붙여놓고 러시아어 단순 무식하게 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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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러시아 영화 ‘레토’에서 주인공 빅토르 최를 연기한 배우 유태오. 오랜 무명생활을 거친 그는 “진정성과 성실함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수확”이라고 말했다.
- ‘레토’서 빅토르 최 연기… 칸에서 주목받은 유태오

美·中·泰서 15년간 무명생활
영화서 기타연주·노래 돋보여
“더 이상 김칫국 안 마실 것
韓 돌아가면 계속 연기 연습”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러시아 영화 ‘레토’(키릴 세레브렌니코프 ) 공식 상영회가 열렸다. 러시아 남녀 배우와 함께 한국 남자 배우 한 명이 레드카펫 위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카메라는 주로 러시아 배우들의 얼굴을 잡았다. 하지만 영화 상영 후 뤼미에르극장 스크린은 상영 전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배우의 얼굴로 가득 찼다.

이 영화에서 요절한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스타 빅토르 최를 연기한 유태오(37)다. 이 영화는 이름이 알려지기 전 그룹 키노로 활동하던 빅토르 최와 그의 우상 마이크(로만 빌리크), 마이크의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센바움) 등 세 사람이 겪는 우정과 로맨스, 음악적 고뇌 등을 담았다.

유태오는 대부분 흑백으로 촬영한 이 영화에서 유창한 러시아어와 기타연주, 노래 등을 선보이며 러시아 배우들 사이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힘 있는 연기를 펼쳤다. 13일 칸 현지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그는 “실감이 안 난다. 꿈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며 “진정성과 성실함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칸영화제에 온 소감을 밝혔다.

독일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연기 공부를 한 후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힘으로 연기자의 길을 개척해온 ‘노력형’ 배우다. 이번 영화 배역도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따냈다.

“감독에게 ‘셀카’ 사진과 기타 치는 동영상을 보냈더니 오디션을 보러 모스크바로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영어로 오디션을 봤는데 캐스팅이 된 후 러시아어를 해야 한다는 얘길 들었죠. 혼란스러웠지만 하겠다고 했어요. 감독은 창작의 지휘자고, 배우는 악기라는 게 제 연기철학이에요. 받은 시나리오를 찢어서 호텔 방 벽에 붙여놓고 단순무식하게 외웠어요. 노래도 1곡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결국 9곡을 소화해냈죠.”

지난 2009년 ‘여배우들’로 한국 스크린에 데뷔한 후 태국, 베트남, 중국, 할리우드 등에서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15년간 ‘무명’으로 지냈다. “5년 전까지는 엄청 힘들었어요. 도망가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었죠. 잘리기 싫어서 열심히 했어요. 영어도 할 수 있고, 연기 경험도 있으며 돈이 적게 드는 ‘회색 경계’에 있는 배우라 동남아에서 자주 캐스팅이 됐어요.”

부모님이 파독 광부·간호사 출신인 그에게 “부모님의 나라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한국에 왔냐”고 묻자 “내 욕심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화가가 색깔 하나를 더 얻으면 그림이 섬세해지듯 연기자로서 풍부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욕심과 호기심으로 한국에 왔어요. 먹고살기 힘든 현실적 고민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자아에 변화가 왔고, 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20대에 떴으면 오만한 배우가 됐을 거예요.”

이번 칸 초청이 그의 연기인생에 큰 변화를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김칫국은 안 마시겠다”고 강조했다.

“2006년에도 미국 독립영화로 칸에 왔지만 아무것도 없었어요. 김칫국은 그동안 충분히 마셨어요(웃음). 한국에 돌아가면 연기 연습하고, 출연 제의가 안 들어오면 오디션 보러 다녀야죠.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계속 훈련하는 것처럼요.”

칸 = 글·사진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mail 김구철 기자 / 문화부 / 부장 김구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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