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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6일(水)
생산기술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국가성장의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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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에서 관람객들이 무인 자율주행자동차,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웨어러블 컴퓨터 등과 관련한 반도체 기술 혁신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18)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 ‘기술진보’

경제성장 기본 동력은 ‘생산성’
자본·노동 등 생산요소 투입때
기술력 따라 산출량도 달라져

성장이론 관심받던 1980년대엔
기술진보 아닌 생산요소를 중시
외환위기 뒤 ‘기술 중시’로 변화
요인 규명하는 연구들 활발해져

한국 외환위기뒤 성장률 하락세
생산요소 기여도·교역 위축되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낮은 탓도

최근 떠오르는 성장관련 이슈는
포용적 성장·기술혁명으로 요약


#1. “생산성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거의 모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활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거의 전적으로 노동자 한 사람당 생산량을 올릴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P 크루그먼의 말이다.

이 인용구는 비록 수요가 성장을 제약하는 병목이라고 믿는 케인지언도 궁극적으로는 공급 측면에서의 생산성이 열쇠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요약하자면 긴 호흡에서 바라볼 때 생산성이 나라 경제의 성장과 복지의 유일한 잣대라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하나는 ‘왜 성장이 중요한가’다. 당연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답하기는 까다로운데 필자가 강의시간에 하는 답변은 이렇다. 노동친화적인 정부가 자본에서 노동으로 소득재분배를 추진한다고 하자. 이 소득재분배 정책은 노동의 복지 수준을 개선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는 하나 자본의 소득이 모두 노동으로 이전될 때 더 이상 노동의 복지는 늘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소득재분배 정책은 노동의 복지를 끌어올리는 ‘지속가능한’ 수단은 아니다. 성장이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20세기 초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북미의 캐나다는 떠오르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소득, 인종구성, 부존자원, 교육수준 등 공통점이 많았던 두 나라는 반세기가 넘어서면서 경제적 격차가 벌어졌으며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 남미의 맹주 자리를 넘겨주었고 얼마 전 다시 콜롬비아에 추월당했다.

<그림 1>은 당초 동일한 소득수준인 A국이 매년 1%씩, 그리고 B국이 3%씩 성장할 때 소득수준의 격차를 보여준다. 5년 후 B국 소득은 A국의 1.1배, 10년 후 1.2배 정도에 불과하나 50년 후 2.7배, 100년 후 7.1배로 그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성장이 한 나라 경제성과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2. 크루그먼의 인용구와 관련한 또 다른 의문은 ‘왜 생산성이 성장의 동력인가’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첫 번째보다 어렵다. 경제교과서는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생산하는 생산함수, 즉 자본(K)과 노동(L)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에 따른 산출량(Y)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Y=AF(K, L)



위 식에서 A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 및 산출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생산기술로 볼 수 있다. 같은 양의 생산요소를 투입해도 생산기술에 따라 산출량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생산기술이 생산성이며, 정확히는 ‘노동자 한 사람당 생산량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인 노동생산성과 구별하기 위해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이라고 한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생산성은 사실 TFP를 의미하며 TFP가 증가할 때 노동생산성도 높아진다. 결국 그의 인용구는 생산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이 경제성장의 관건이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직접 계량화할 수 없는 기술진보를 측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성장론의 창시자인 L 소로는 다음과 같이 GDP 성장률을 생산기술, 자본, 노동별 성장기여도로 구분한 성장회계를 고안했다.

모수 α는 GDP에서 차지하는 자본소득의 비율을, 그리고 1-α는 노동소득비율을 의미한다. 성장회계의 식으로부터 생산기술이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측정할 수 있다.

식의 오른쪽 항은 모두 통계적으로 추정 가능하다. 그러므로 TFP의 증가율은 비록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GDP 증가율에서 자본과 노동의 성장기여도를 차감한 값으로 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TFP 증가율을 ‘소로 잔차(殘差)’라고도 한다.

성장회계의 식에 따르면 생산기술뿐 아니라 투입된 생산요소(자본과 노동)도 성장에 기여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경제성장이 소로 잔차로 측정된 기술진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일까. 이는 성장회계의 식으로부터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통상 GDP 대비 자본스톡의 비율은 안정적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스톡의 증가율은 경제성장률과 유사하다. 이 사실을 이용하면 일인당 GDP 증가율(ΔY/Y-ΔL/L)은 전적으로 소로 잔차에 의존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기술진보의 중요성은 다음에 설명하는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3. 성장이론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다. 종전 후 많은 신생국이 탄생했다. 40년여의 세월이 흐르자 이들 나라 사이에 상당한 경제적 격차가 벌어졌고 이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관심은 개도국 가운데 초고속성장을 이룬 아시아 네 마리 용의 성장회계에 있었다.

실망스럽게도 많은 연구는 일관되게 이들 나라의 고성장이 1960년대의 서유럽과 같은 기술진보라기보다는 자본과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존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크루그먼은 1994년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제관계 전문잡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아시아 기적의 신화’에서 아시아 네 마리 용의 고성장은 단지 투입에 따른 산출의 결과물에 불과하며 마치 사회주의 전성기인 1960년대 소련을 떠올린다고 폄하했다. 쉽게 말해서 투입에 한계가 오면 이들 나라의 고성장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년 뒤 일어난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크루그먼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자본축적은 투자에서 비롯하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GDP 대비 투자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높은 저축률에도 불구하고 투자수요가 너무 커 해외에서 외채를 조달했고 기업이 외채를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한국경제는 쓰러졌다.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성장이 중요하나 성장의 질이 문제이며 성장의 질은 지속가능성에 달린 것임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건이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일인당 GDP 증가율은 한국의 6분의 1도 채 안 되었으나 증가율의 80%가 기술진보에 의존했다. TFP가 지속가능한 성장의 열쇠인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소개한 크루그먼의 인용구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생산기술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거의 모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활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거의 전적으로 기술진보를 이루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연스럽게 연구자들의 관심은 성장회계에서 기술진보로 옮겨 갔다.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나라 경제 차원에서 기술진보의 요인을 규명하려는 연구가 정치, 사회, 법,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일어났으며 많은 것이 밝혀졌다. 이른바 신(新)제도주의라고도 하는 이 이론은 제도의 상호작용과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밝혀내고자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정된 물가와 운송, 통신, 교육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와 같은 거시경제적 요인, 정보 및 거래비용을 낮추고 위험의 분산·다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금융, 재산권을 존중하는 법과 제도적 안정성을 갖춘 지배구조 등이 그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많은 나라 중앙은행이 도입한 물가안정목표제 통화정책은 신제도주의의 산물이다.

시장규율이 기술진보의 핵심적인 필요조건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관성 있게 개방을 추진한 저소득국가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유일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 많은 개도국이 문을 열었고 글로벌 경제는 급속히 팽창했다. 이제 어떤 나라도 번영의 방법을 몰라서 정체의 길을 걷지는 않는다. 물리학에서 독립해 경제학의 고유영역을 개척한 합리적기대 혁명가 R 루커스는 저소득국가의 부패, 경제규제와 같이 자신이 스스로 만든 지대추구적 행위가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4. <그림 2>는 우리나라의 성장회계를 보여준다. 일인당 실질 GDP 성장률과 TFP 증가율의 차이가 투입 생산요소의 GDP 성장기여도를 나타낸다. 외환위기 전후로 성장회계의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으며 성장률의 하락에는 무엇보다도 생산요소의 성장기여도가 줄어든 데 그 배경이 있다. 한편 글로벌금융위기 후 TFP 증가율, 즉 소로 잔차도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주요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 전 세계 교역의 위축에 따른 파급효과로 해석된다.

▲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 (성균관대 교수)
우리나라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은 TFP를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다.<그림 3>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경제활동이 왕성해지는 30대에서 무려 30% 이상의 격차가 일어난다. 비록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완만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선진국과의 격차는 해소되지 못하고 있으며 전체 경제활동참가율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미국(18%, 2015년), 일본(2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보다 월등히 높은 성별 임금격차(37%) 역시 TFP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다.

글로벌경제의 대침체기에서 성장에 관련한 두 이슈가 떠올랐다. 하나는 포용적 성장이다. 포용적 성장은 성장의 지속가능성과 잠재력이 손상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장의 혜택이 경제주체 간에 광범위하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성장의 미시적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단지 빈부격차의 해소가 아닌 사회발전을 주도할 혁신인재풀을 넓히고자 하는 데서 그 당위성을 찾고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포용적 성장은 TFP를 높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생산요소의 투입과 산출량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혁명이다. 정보집약적인 생산활동의 속성상 기술혁명은 기업의 생산이 증가할수록 그 비용이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를 창출함으로써 승자독식의 길을 열었다.(문화일보 4월 25일 자 24면 17 회 참조)

그러므로 기술혁명은 양극화가 한 국가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가 간 양극화는 성장이론의 수렴가설-소득이 낮은 나라가 높은 나라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한 나라의 성장률은 하락한다는 속성-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과연 기술혁명이 가져올 특이점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는 지금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경제학회장 (성균관대 교수)
e-mail 신창섭 기자 / 사진부 / 부장 신창섭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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