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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時評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7일(木)
‘ICT 지성’ 없인 추격자 신세 못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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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커즈와일·서프·프레이 영입해
미래 트렌드 선도해가는 구글
美기업 앞다퉈 ‘선지자’ 중용

한국 기업들엔 이런 노력 부재
아무리 잘해도 주변부 머물러
新키워드 제시할 인재 키워야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이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망(網) 중립성 폐기, 사물인터넷(IoT)의 위험, 가짜 뉴스 대응 등 인터넷과 관련한 주제로 강연을 했다. 서프 부사장은 인터넷과 TCP/IP 프로토콜의 탄생에 기여한 공로로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전산학자인데, 구글에서 수석 인터넷 전도사(Chief Internet evangelist)라는 별칭을 갖고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지난 1월에 참석했던 태평양전기통신협의회(PTC) 콘퍼런스에서 서프 부사장은 인터넷 전도사라는 별칭에 걸맞게 ‘인터넷의 지난 40년 그리고 향후 40년’이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했는데, 인터넷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무척 돋보였다. 구글은 2012년에도 천재 엔지니어 레이 커즈와일을 수석 미래학자(Chief Futurist)로 영입했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 등 주요 저서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순간을 예언한 바 있다. 또한, 다빈치연구소의 시니어 연구원이자 IBM에서 15년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로 활약한 토머스 프레이도 구글에 고용된 미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 미래의 트렌드를 제시하기 위해 직관력이 높은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는 미국의 ICT 기업은 구글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신비로운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매직리프(Magic Leap)가 있다. 지난 2010년 로니 어보비츠가 창립한 매직리프는 증강현실(AR) 기술과 헤드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를 개발하고 있는데, 가상현실을 다룬 소설 ‘스노 크래시’를 쓴 작가 닐 스티븐슨을 수석 미래학자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유명한 지성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업들이 단순하게 미래전략을 담당할 전문가가 필요했다면 굳이 ‘수석 ICT 전도사’나 ‘수석 미래학자’라는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의 ICT 기업들이 수석 ICT 전도사나 수석 미래학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를 개발하고 이를 트렌드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국의 ICT 기업들은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 유명한 지성들을 트렌드 세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ICT 기업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ICT 기업들에는 트렌드 세터 역할을 담당하는 수석 ICT 전도사나 수석 미래학자가 없다. 수석 재무책임자, 수석 마케팅책임자, 수석 정보책임자는 있어도 미래의 흐름을 읽고 예언할 수 있는 선지자는 없는 것이다. 아마 수석 ICT 전도사나 수석 미래학자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 결과 우리나라 ICT 기업들은 게임의 규칙을 변화시켜 그 과실을 선점하기보다는 늘 미국의 ICT 기업들이 창출한 유행을 비판 없이 추종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실 창조경제도, 그리고 4차 산업혁명도 우리나라 ICT 기업들 스스로 창출해낸 개념이 아니라, 외국에서 제시된 트렌드이기 때문에 이 트렌드를 수용할 때부터 이미 1등은 달성하기 어렵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ICT 기업들 스스로 미래의 트렌드를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면 열심히 노력해도 세계시장에서 늘 2등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설사 국지적인 전투에서는 이긴다 하더라도 전쟁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또한, 글로벌 ICT 생태계의 중심이 되기는커녕 계속 주변부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ICT 기업들도 ICT 산업의 미래 트렌드를 상상하고 예측해 구체적인 키워드로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ICT 전도사를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업계에 없다면 학자, 연구자, 정책담당자 등 타 영역의 탁월한 지성들을 영입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미래의 ICT 전도사를 육성하는 데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ICT 전도사들이 반드시 우리나라 인재일 필요는 없다. 외국의 인재들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대변하는 키워드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들을 과감하게 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서프’가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나라 ICT 기업들이 그 개념을 현실로 만들어 세계에 전파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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