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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18일(金)
‘기업사냥꾼’ 앞의 족쇄 찬 국내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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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용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장

다시 엘리엇의 사냥이 시작됐다. 엘리엇은 최근 5년간 50번의 사냥에서 단 한 번 실패한 세계 최고의 기업 사냥꾼이다. 대표적 실적은 세계 최대 광산업체 BHP빌리턴, 아르코닉 등이다. 논쟁 중이지만,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과 GE, 포드, US스틸 CEO들이 이런 기업 사냥꾼의 희생양이 됐다. 이번 엘리엇의 사냥감은 현대자동차다.

그의 공격 포인트는 최근 발표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모비스를 사업 분할한 후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개편안을 냈다. 사업 확장이 어려운 지주회사 체제를 포기하고 적극적인 투자 활동을 위해 선택한 지배구조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위기를 겪은 현대차그룹은 초일류 자동차 제조업체뿐 아니라 구글, 우버, 애플, 테슬라 등 자율주행차를 선도하고 있는 IT 기업과의 목숨을 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사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했다. 그 절박한 심정이 이번 개편안에 담겨 있었다. 절박함은 특히 대주주가 1조 원 이상의 세금을 부담하기로 한 대목에서 읽힌다. 이는 엘리엇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엘리엇의 전장(戰場)은 오는 29일 현대모비스 주총장이다. 여기에서 엘리엇은 참석 주주의 3분의 2가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개편안에 찬성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공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전쟁에서 실패하더라도 엘리엇은 자사주 소각, 사외이사 선임, 배당률 인상 등을 요구하며 수익이 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다. 끝까지 물어뜯는 하이에나식(式) 사냥이다.

그동안의 엘리엇 행태를 보면 현대차를 겨냥한 이유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소액주주 보호 및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자 35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엘리엇이 1%가 조금 넘는 모비스 지분을 들고 소액주주로 둔갑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이 정도의 지분이면 얼마든지 삼성이나 현대차그룹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다.

우리나라 상장사들은 무장해제된 지 오래다. 공격할 무기도, 변변한 방어 수단도 없다. 그 근본적 이유는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의 압축 성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대주주가 독자적으로 회사의 백년대계를 짜는 건 무리다.

차등의결권, 포이즌필과 같은 제도가 없어 순수한 액면 지분율로 골리앗을 상대해야 한다. 이 중 차등의결권 제도는 알리바바를 위해 홍콩 증시가 도입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소수 주주인 기업 사냥꾼에게는 엄청난 무기들이 주어진다. 1% 정도의 지분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이사의 선임을 요구할 수 있다.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의 3% 의결권 제한은 대기업에는 족쇄이자 사냥꾼에게는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현재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 가운데는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가 있다. 이 중 집중투표제는 이들의 적은 지분을 3, 4배 늘리는 승수효과를 제공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0.01%의 지분율로도 자회사의 경영자를 소송에 끌어들이는 올가미 역할을 한다. 몇몇 나라에서 선별적으로 분산 시행되고 있는 두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동시에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도 결코 현대차의 편이 아니란 뜻이다.

기업의 이익 빼가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투기자본과 회사의 장기 성장 및 생존을 지향하는 기업의 방향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까지 엘리엇의 투자자-정부 소송(ISD)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장기 성장과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한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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