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독재자의 ‘인권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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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독재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독립된 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독재국가도 민주주의 국가처럼 사법제도는 형식적으로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최고 권력자의 마음대로 구금과 석방을 버젓이 반복하는 ‘고무줄 법치’를 자행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프놈펜에 있는 주(駐)캄보디아 미국 대사관 신축 건물 개관식 때 일이다. 개관식 참석차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훈센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구금 문제를 지적했다. 훈센 총리는 “우리나라는 독립적인 사법제도를 갖추고 있어 나를 포함한 누구도 관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힐 차관보가 “물론 그렇겠지만, 인권운동가를 탄압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아주 복잡해질 수 있다”고 얘기하자, 훈센 총리 안색이 바뀌었다. 그는 참모들과 협의 형식을 취한 뒤 “미국대사관 개관 선물을 주겠다”며 즉석에서 석방 결정을 했다.

쿠바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도 걸핏하면 지식인들을 국가반역죄 명목으로 잡아들였다가 유럽의 압박이 있으면 없던 일로 하곤 했다. 지난 2005년 뉴욕에서 쿠바의 반체제 저널리스트 겸 시인 라울 리베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국가반역죄, 미국 찬양죄로 2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외국 신문에 쿠바 실상을 공개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프랑스 배우 카트린 드뇌브,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등 유럽의 진보적 인사들이 항의 편지를 쓰며 인도적 지원 중단을 압박하자, 카스트로는 그를 1년 8개월 만에 석방했다.

북한도 방북 미국인들을 갖은 명목으로 체포해 국가전복 음모 혐의 등을 씌우고, 미 고위층이 방문해 호소하면 석방해주는 행위를 반복했다. 본질은 ‘인질 외교’인데, 아량을 베풀 듯 해 온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불법 입경죄로 노동교화형 12년형을 선고받은 미국인 여기자 로라 링과 유나 리를 석방시키기 위해 2009년 방북했고, 지난해 8월 조지프 윤 당시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5년형을 선고받은 오토 웜비어 석방을 위해 평양을 찾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방북 때도 북한은 10년 안팎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재미교포 김동철·김학송·김상덕 씨 등 3인을 석방했다. 외국인에 대한 첫 특별사면이라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김정은 1인 지배 체제임을 인정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