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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World & Idea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23일(水)
터키의 ‘自由 뺀 민주주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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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에르도안, ‘술탄’으로 선출 예정
‘구체제 질병 청소’ 속 6월 대선
‘국민 의지 독점’은 독재의 예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마침내 ‘21세기 술탄’으로 공식 등극하는가. 터키에서는 다음 달 24일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동시에 치러진다. 지난달 18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원래 내년 11월로 예정돼 있던 선거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주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PK)과 범(汎)터키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행동당(MHP)의 연대 후보로 추대됐는데,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무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터키는 2016년 7월 불발 쿠데타 이후 국가비상사태 상황에 있는데, ‘구체제 질병 청소’란 이름 아래 반대세력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공직에서 몰아내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인권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16만 명이 체포되고 공무원 15만2000명이 해임됐다. 그리고 이번 달에도 101명의 전·현직 공군 간부가 체포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터키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군부 주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민주투사로 떠오른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세력의 지지로 2002년 11월 총선에서 승리해 2003년 내각책임제 총리로 선출됐다. 그때만 하더라도 서구 민주주의자들도 에르도안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서구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들어온 것처럼,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로 수용되는 ‘이슬람민주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델로 여기기도 했다. 에르도안은 일부 우려와 달리 나토(NATO)를 탈퇴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에 길을 내주지 않아 삐꺽거리기도 했으나, 급속한 대미 관계 변화도 추구하지 않았다. 또, 친(親)이슬람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강화해 나갔지만, 시장경제 틀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에르도안이 직선제로 바꿔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전까지 헌법상 터키 대통령은 실권 없는 상징적 자리였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대중의 열렬한 지지와 결합한 직선제 대통령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시한 ‘직접 민주주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법과 제도보다는 ‘국민의 의지(people’s will)’가 중요하게 됐으며, 에르도안 지지 세력이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의 독점적 대변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의회나 사법부 인사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탄압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7월 불발 쿠데타가 발생했다. 에르도안은 이를 역습의 기회로 활용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세속주의 군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함으로써, ‘선출된 술탄’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근대 터키공화국은 1922년 11월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10월 공화정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 케말 파샤 중심으로 서구화된 군부가 ‘탈(脫)이슬람-입(入)유럽’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 등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그늘’이 발생했으며, 기득권층의 부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그리고 터키 근대화 세력은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했으나, 문화적·이념적 헤게모니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빼앗아 오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에 터키 군부는 자신을 ‘헌법의 수호자’로 규정한 헌법 조항을 만들고, 헌법 위기라 판단될 때마다 쿠데타를 일으켜 반(反)헌법 세력을 축출하는 ‘무장한 헌법 재판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군부 중심 체제는 한계에 부닥쳤다.

결국 21세기 들어와서 권력이 민주와 국민주권을 외친 이슬람주의 세력에 넘어갔다. 그리고 ‘민주주의 제한’ 시대가 가고 ‘민주주의 폭주’가 시작되더니, 공화제가 사라지고 ‘현대판 술탄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는 에르도안의 ‘이슬람민주주의’ 세력이 자유(自由)를 빼고 민주주의만을 언급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서구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면서 굳이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와 민주주의 절차의 제도화가 무시될 경우 민주주의란 이름 아래 ‘다수의 폭정’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수의 폭정은 1인 독재로 귀결됐던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더 위험한 것은 에르도안이 범터키주의를 넘어 오스만주의(Ottomanism)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회복하자는 것인데, 터키 술탄을 넘어 ‘예언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인 칼리프 지위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 대한 터키의 개입이 노골화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국민의 이름을 독점한 ‘민주 독재’가 터키만의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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