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고용보험 퍼붓기, 근로亂場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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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KAIST 교수 경영학

연장근로 시간 규제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의 불만이 제기되자 정부는 근본적인 제도적 해법이 아니라, 또 돈 푸는 임시방편을 들고 나왔다. 중소기업이 근로시간을 단축한 뒤 새로 인력을 채용하면 정부가 최대 3년간 월 100만 원씩 지원한다는 것이다. 기존엔 최대 2년, 월 80만 원이었으니 실제 지원금은 월 20만 원이 고작이다. 그것도 정부 돈도 아닌 사업주와 근로자가 모아둔 고용보험으로 지원하면서 정권이 생색을 내고 있다.

정부의 연장근로에 관한 규제가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것인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시간이 OECD의 2위인 것은, 생산성이 세계 33위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1인당 GDP, 시간당 생산 GDP와 근로시간은 반비례한다. 즉, 생산성이 높은 나라는 적은 시간 일을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으므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도 생산성이 낮던 1920년대에는 주당 60∼70시간이나 일했다. 우리나라도 노동생산성과 노동시간의 상관관계에서 크게 벗어난 나라가 아니다. 생산성의 고려 없이 절대 근로시간으로 비교해서 근로시간이 길다는 주장 자체가 우리의 경제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생산성에 비해 투입 요소의 비용을 올리면 대외 경쟁력은 줄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보다 소득이 월등히 높고 한 해에 300명가량이 과로로 숨지는 일본에서는 2019년부터 시행되는 연장근로의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바쁜 달은 월간 100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근로자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주 48시간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근로계약을 허용하고, 연간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탄력적으로 시간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 아무런 예외 없이 주당 12시간으로 월 48시간만 허용하는 우리의 규제는 사업의 계절적 요인들에 대처할 수가 없다.

많은 산업은 계절적 수요 변동이 매우 크고, 정보 시스템 개발이나 선박 건설 등 프로젝트 산업은 일의 정확한 사전 계획이 어려워 때에 따라 많은 연장근로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업의 특수성이 무시된, 전 세계에서 가장 제약적인 연장근로 규제가 도입된 것이다. 이 점에서 고용보험 퍼주기는 탄력근무제의 대안이 아니다.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근로시간 규제가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지는 효과는 실증 연구에서 없거나 미미하다. 전문성과 연속성이 큰 일을 임시로 다른 사람을 써서 나누려고 하면 설명하고 감독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의 신규 고용에 따라 노동생산성과 상관없는 임금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교란 행위로,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노동자를 보상하는 것이 된다.

고용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일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이지 규제의 추가 도입이 아니다. 헤리티지재단의 2018년 경제자유도 조사에서 노동시장의 자유도 순위는 조사 대상 184개국 중 101위이다. 완전고용을 자랑하는 미국이 2위, 일본이 15위다. 최근 발표된 고용유연성 지수에서 한국은 41개국 중 37위로 바닥권이다. 이 조사 수위인 덴마크·미국·일본의 실업률이나 청년실업률은 우리보다 낮고 경기 변동에 따라 일자리 복원 속도가 훨씬 탄력적이다. IMF, OECD 등 국제기구가 일관되게 권고하는 고용유연성과 거꾸로 가는 청개구리 규제가, 현 정부 1년 만에 민간 일자리 창출 능력을 완전 고갈 상태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