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비판 재갈 물리고 탈북자 불안 더 키울 ‘태영호 사퇴’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23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에서 사퇴했고, 연구원 측은 24일 면직 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태 전 공사와 연구원 측 모두 ‘자진 사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시기와 정황을 종합할 때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압력이 제1 요인임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태 전 공사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와 지난 14일 국회에서 진행된 출판 기념 강연 내용을 트집 잡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6일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있다”고 비난했고, 리선권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측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언론에 “왜 사퇴하게 됐는지는 차후 남북관계가 평가할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됐다”고도 했다. 최근 활동에 제약이 많았으며, 자신의 사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취지다. 단기적으로 이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대의(大義)는 북한 협박에 휘둘려 북한 체제 비판이 위축돼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 대한민국을 선택한 3만여 명의 탈북자를 불안하게 해서도 안 된다.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황 전 비서는 당시 ‘국정원(원장 임동원)으로부터 출판과 정치인·언론인 접촉 등을 금지당했다’고 밝혔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도 마찬가지다. 이한영 씨는 1997년 암살당했고, 황 전 비서도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이들에 대한 보호 임무는 대한민국 헌법의 명령이다. 북한은 지금도 탈북 여종업원 송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태 전 공사 같은 고위층 출신 인사를 정부가 보호하지 못하면 일반 탈북자들은 더 큰 불안을 느낄 것이다.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정권에서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