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칸마다 악어·독수리… 혼자 기차에 탄 아이의 모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한 기차 / 한아름 지음 / 창비

오후 2시 57분. 빨간 모자가 달린 옷을 입은 어린이가 곰돌이 배낭을 메고 혼자 기차를 탄다. 2번 객차인데 목적지 표시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하늘에서는 깃털 하나가 홀연히 날리고 기차는 출발한다. 승차권을 확인하는 차장은 늑대다. 어린이에게 다른 칸으로 가라고 한다. 두려움을 안고 다른 객차의 문을 열었더니 금목걸이와 팔찌를 한 오랑우탄이 털이 북슬북슬한 손을 내민다. 모험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이 새로운 객차에 들어설 때마다 무서운 동물이 등장하고 다음 객차를 향해 도망친다. 어느 객차는 늪이고 악어가 헤엄치고 있으며 어느 객차는 상어가 기다리는 바다다. 잠수부가 이 대열에 합류한다. 잠수부는 사람이니까, 아이를 도우러 온 것일까? 정체는 알 수 없다. 다음 객차에서는 다리 아래로 훨훨 나는 독수리들과 구름이 지나간다. 기차는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다. 기차 선반 위로, 풀숲으로 아이는 도망가고 추격자는 바짝 따라온다. 이 모험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것 같다. 겁에 질려 주저앉은 아이를 두고 무시무시한 등장 인물들이 성큼성큼 주인공을 지나쳐 가버리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절정이면서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주인공을 쫓아온 동물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뜻밖의 결말 앞에서 주인공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린다.

주인공의 여행은 12번 객차에서 끝난다. 기차는 무사히 할머니 집에 도착하고 주인공은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긴다. 시계를 보니 7시 17분. 네 시간 남짓 달려왔으니 한숨 푹 자는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많이 꾸는 꿈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이다. 꿈속에서 밀림을 기어가기도 하고 벼랑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어른들은 땀에 젖어 깨어나 안도하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면서 ‘키 크는 꿈’을 꾸었다고 말해준다. 어린이에게 성장의 과정은 이처럼 박진감 넘치는 순간의 연속이다. 한아름 작가는 그 과정을 흑연의 부옇고 몽환적인 느낌을 살려가면서 이 모험을 하나의 호흡으로 긴박하게 그려냈다. ‘혼자서 할머니 집에 간다’는 빨간 모자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전승되었으며 최근까지도 많은 작가가 새롭게 바꾸어 쓰고 있는 강렬한 옛이야기다. 미야코시 아키코(みやこし あきこ)의 ‘심부름 가는 길에’와 견주어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신인 작가에 의해 빨간 모자의 흥미롭고 독창적인 변형이 또 하나 탄생했다. 44쪽, 1만2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