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다시 태어나도 골프… 선수시절 휴식 몰랐던 게 가장 후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 프로가 지난 15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하늘코스에서 열린 행복나눔 라운드 도중 짬을 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김영 프로골퍼·해설위원

맹훈은 하늘이 알아주리라 믿어
기절할 때까지 연습만 한 적 많아
막판 체력 저하로 2등만 19차례

최근 긴 머리 잘라 단발로 바꿔
여성팬들 “굿” 남성팬들 “아쉽다”

주변 미혼 선배 많아 결혼 무덤덤
놓치기 싫은 사람 생기면 해야죠

“아마 다시 태어난다면 훨씬 억척같은 골프 선수가 될 거예요.”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3대 투어에서 우승했던 김영(38) 프로는 골프중계 해설위원 3년 차로 물오른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로 시작해 200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10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까지 두루 경험한 뒤 2015년 말 미련 없이 은퇴했다.

지난 15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하늘코스에서 김 프로를 만났다. 김 프로는 이날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을 앞두고 최경주, 박세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남녀 골프 레전드 10명이 한국 골프계를 이끌어갈 엘리트 주니어들을 상대로 펼친 ‘행복 나눔’ 라운드에 참석했다. 라운드를 마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 프로는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얼마 전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단발로 잘라 분위기가 한결 달라졌다. 그는 “훨씬 어려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라며 웃었다. 헤어스타일을 바꾼 건 방송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년 동안 생방송 골프아카데미를 진행하다가 한동안 중단했다. 그런데 방송사에서 두 번째 시리즈를 촬영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고민 끝에 머리부터 잘랐다. 새 프로그램이 예전과 비슷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시청자들이 재방송이라고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단발머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여성팬들은 “잘 어울린다”며 호평했다. 하지만 남성팬들 사이에선 “왜 잘랐냐”는 식의 아쉬운 반응이 많았고 일부는 SNS를 통해 “안 어울린다”며 화를 냈다. 김 프로는 “오히려 미용실에 자주 가 손질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더 많아 다시 길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프로는 은퇴 후 아무 일 안 하고 2년간 무작정 쉬려고 했다. 하지만 방송국 PD가 자신의 은퇴기사를 보고 해설을 제안했고, ‘찾아온 기회를 잡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해설을 맡게 됐다. 현역시절 연말 KLPGA 대상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을 만큼 빼어난 외모와 말솜씨를 지닌 덕분에 오디션은 거치지 않았다. 해설가로서의 일상도 선수생활 못지않게 바쁘다. 해설이 잡혀있는 대회 코스는 36홀을 미리 돌아본다. 답사가 끝난 다음 핀 위치까지 점검한다. 1라운드 전날 2시간 정도 코스에 대한 자료를 점검하고, 우승 후보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경기 당일 오전 일찍부터 코스에 나와 코스 상태와 선수의 컨디션을 점검한다. 생방송으로 5시간 넘게 한자리에 앉아있어야 하고, 말을 계속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 선수 출신이다 보니 간혹 어휘력 구사에 애를 먹는다. 방송 후 SNS 등을 통해 쏟아지는 칭찬은 큰 힘이 된다. 선수 시절 만들어 놓은 깨끗한 이미지 덕에 ‘안티 팬’은 거의 없고, 오히려 ‘광 팬’이 더 많다. 실수해도 덮고 넘어가는 편.

현역시절 가장 큰 아쉬운 점은 준우승이 꽤 많다는 것. 2007년 5월 코닝클래식 우승 이전까지 김 프로는 준우승만 19차례 차지했다. 2부투어 우승으로 2002년 LPGA투어에 합류한 그는 6년 동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폴라 크리머(미국)와 엎치락뒤치락 접전 끝에 3타 차로 따돌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LPGA에서 우승컵을 안자 기쁨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없이 울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벙거지는 7년 동안 후원해준 신세계 로고가 떨어져 나간 ‘빈 모자’였다. 당시 골프여제로 군림했던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게 뺏긴 우승도 많았다. 2005년 일본에서 열린 미즈노클래식(현 토토재팬클래식)에서는 첫날 63타까지 쳐 선두로 나섰지만, 마지막 날 64타를 친 소렌스탐에게 발목을 잡혔다. 그는 우승을 다툴 때면 언제부턴가 소렌스탐의 성적부터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연습을 많이 하면 하늘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히려 마지막 날 집중력저하로 되돌아 왔다.

김 프로는 “선수 시절을 돌이켜보면 휴식을 몰랐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쉴 줄도 알아야 했지만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것.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진짜 기절할 때까지 연습만 한 적도 많았다. 그는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되레 발목을 잡았다”며 “강약조절을 하거나 좀 더 약게 플레이했다면 보다 좋은 결과와 더 오래, 즐겁게 선수생활을 했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김 프로는 미국에서 늘 부모님과 함께 다녔다. 부모님은 대회 코스에 늘 따라 다녔지만 언론에 노출 한 번 되지 않았을 정도로 조심했다. 숨어지낸다 해서 아버지(김정찬)의 별명이 ‘빨치산’이었다. 딸에게 최대한 피해 안 주고 신경 안 쓰게 하려고 코스에서도 늘 나무 뒤에 숨거나 아예 주차장 차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많았다.

김 프로는 LPGA투어에서 7년을 뛰다가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간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당시 미국 경제가 안 좋아 대회가 확 줄었던 탓도 있었고 또 처음엔 미국과 일본 투어를 병행하려 했다. 일본 퀄리파잉토너먼트(QT)를 1위로 통과했고 일본 대회의 환경이 생각보다 좋아 눌러앉기로 결심했다. 2010년 일본에 가서 2013년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15년까지 활동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김 프로는 인생의 80% 이상을 골프 선수로 살아왔다. 그는 “만일 다시 태어나도 무조건 골프선수를 하겠다”며 “다시 하면 오히려 더 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30세 때부터 결혼에 대해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주변에 미혼 선배들이 여전히 많기에 언제부턴가 스스로 무덤덤해졌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일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 놓치기 아쉬운 사람이 나타난다면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운을 남겼다.

인천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