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평균 79세… ‘아코디언 봉사’하기 딱 좋은 나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양시 실버 아코디언 연주단’ 단원들이 지난 19일 경기 고양시 종합운동장 동아리 연습실에서 지휘자 공길남(사진 맨 왼쪽) 단장의 지휘로 병원 환자들에게 들려줄 곡을 연습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19년째 연주봉사 고양 실버 아코디언 연주단

매주 2번 연습…레퍼토리 150곡
악기 하나로 멜로디·반주 다 가능
모든 장르 어울리는 매력에 흠뻑

병원·요양원·경로당 등 음악봉사
月 7~12곳 찾다보니 벌써 733회
이젠 연주회마다 찾는 고정 팬도

“노래·연주·봉사 다니느라 바빠
세포가 죽고 늙을 시간도 없어
환자들 행복해할 때 가장 보람”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우리의 연주를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행복해할 때 그것만큼 기쁘고 흐뭇한 것이 없습니다.” 직장에서 은퇴한 60∼80대 어르신들로 구성된 아코디언 연주단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주를 하며 노년을 즐겁게 보내면서 요양원 등 복지시설을 방문, 환자들에게 아코디언을 연주해 주는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바로 고양시 실버 아코디언 연주단이다. 2006년 3월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첫 연주를 시작한 이후 올해 19년째 연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고양 명지병원과 일산호수 요양원 등은 2006년부터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곳이지만 지난 16일에는 일산 VIP요양원을 방문함으로써 733회 연주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들은 병원·요양원·경로당·노인대학 등 복지시설에서 연주하는 일 외에도 각종 음악회, 경연대회, 축제행사, 보건교육, 축하 및 위로공연, 경로잔치 등 매달 7∼12곳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6년 2월 한뫼누리 예술단 아코디언 연주단을 창립했다가 2010년 4월 (사)고양시 실버 아코디언 연주단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새롭게 출발했다. 연주단이 창립된 지 12년이 넘었지만 2000년 일산복지관 동아리 활동까지 포함하면 비공식적으로 탄생한 지 18년이 다 돼 간다. 단원들은 모두 10명으로 구성됐다. 평균 연령은 79세다. 이 가운데 공길남 단장과 김주만 총무, 이상길 단원이 창립멤버다. 대부분 단원은 2002년부터 일산 사회복지관 아코디언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그만두고 연주단으로 옮겼거나 현재도 동아리와 연주단에서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 악보에 수록된 노래 150곡 가운데 필요한 몇 곡을 선곡해 매주 2회 연습한다.

단원들은 아코디언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배우고 나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요양원과 병원을 찾아가 연주하고 있다.

19일 오전 11시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고양종합운동장 서문 입구 1층 동아리 연습실. 단원들은 무거운 아코디언을 메고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번지없는 주막’과 ‘시계바늘’을 연주하고 있었다. 온몸의 감정을 악기에 담는 듯 정성을 다해 건반과 버튼을 눌렀고 풀무를 접었다 폈다 하자 화음이 진동하듯 실내에 울려 퍼졌다. 마치 여러 대의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소리 같았다. 잠시 후 연습을 마친 단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단원들은 아코디언 특성과 연주단 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아코디언은 대중적 악기로 트로트뿐만 아니라 팝·재즈·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주할 수 있어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인기라고 했다. 아코디언은 혼자서 온몸으로 멜로디와 반주를 연주할 수 있고, 악기의 떨림이 가슴에 전달되기에 아주 경쾌한 곡을 연주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홍성수(83) 씨는 “한평생 국가를 위해 봉직하다가 은퇴한 후 할 일이 없어 한때 무의미하게 생활했으나 취미활동으로 아코디언을 배우게 됐고 연주단을 통해 배운 재능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봉사를 하게 됐다”며 “이모작 인생을 살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1970년대 상공부 수출국장을 역임한 홍 씨는 “악기와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며 진동을 통해 심장 박동이 동화되면 행복 바이러스가 절로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보다 더 젊게 사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단원들이 초창기 때 2000원짜리 칼국수를 먹어가며 연습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연주를 통해 감명을 받은 환자들이 차차 회복되는 것을 보고는 봉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총무를 맡고 있는 김주만(81) 씨는 “퇴직 이전 여러모로 국가로부터 혜택을 입었는데 사회 약자를 위해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를 하다 보니 상대방이 좋아하고 나 자신도 나이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단원들이 조직생활을 오래 했던 분들이고 서로 존중하고 순응하는 인격체라 연주 활동을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추길광(76) 씨는 “34년 동안 국가의 녹을 먹고 있다가 퇴직할 때 어떻게 하면 남은 인생을 타인을 즐겁게 하고 국가에도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추 씨는 일산복지관 동아리에서 어느 정도 아코디언을 배운 뒤 단장의 권유를 받아 연주단에 가입,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농식품 분야에서 근무했던 추 씨는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아코디언 연주에 보람을 느끼는데 육체 건강도 찾고 같이 어울리며 정신건강에도 좋기에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막내 단원인 김복술(65) 씨는 가입한 지 2년이 넘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다. 그는 김포 모 초교 음악교사를 할 당시 학생들에게 테너·베이스·소프라노·알토를 소화할 수 있는 리코더 악기 합주를 가르쳤다. 그는 “당시 학생들이 음악자료실 청소를 하다가 악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먼지가 쌓여있는 아코디언을 처음 발견했는데, 건반을 마구 움직여 처음 나는 소리를 듣곤 ‘이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 와 닿는 소리가 너무 좋아 아코디언을 혼자 연습하다가 10년 전부터는 강남에서 2∼3년 동안 강습료를 내고 배웠는데 교직 연수를 갈 때면 아코디언 연주요청이 들어오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언가 봉사하면서 나도 즐거울 만한 게 없을까 생각하다 ‘이 아코디언이면 될 수 있겠다’ 싶어 인터넷을 통해 연주단을 알게 됐고 1주일에 2∼3번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한진(79) 씨는 연주봉사 활동이 1300시간에 달한다. 정 씨는 “요양원에서 연주하면 요양보호사와 환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행복해할 때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 연습한 후 무거운 악기를 들고 현장에 갔다 오면 하루 8시간이 다 소요될 정도로 힘들지만 기다리는 환자들과 스스로 힐링이 된다고 생각하면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윤종안(80) 씨는 2003년 직장생활을 할 때 한 경찰 간부를 따라 컴퓨터를 배우다가 우연히 일산 복지관에서 아코디언을 구입해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하모니카를 불어본 게 전부인 그는 2011년 단장의 권유로 연주단에 가입하게 됐다. 교회에 다니며 노래도 잘 부르는 그는 “지금까지 봉사하러 다니면서도 먹는 약 없이 건강한데 아마 아코디언 하면서 노래도 해 하나님이 건강 축복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령인 이상길(85) 씨는 2000년 일산 복지관 아코디언 동아리 회장을 맡으며 오늘날 연주단의 중심역할을 한 인물이다. 동아리에서는 강사를 초빙해 아코디언을 배웠다. 청주대 교수 출신인 이 씨는 “연주단 장점으로 회원들이 육체와 정신 건강이 좋아져 병이 없으나, 단점으로 연주 초청을 받아 차량 2∼3대에 나눠타고 복지시설을 찾아갈 때 이동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보조금 없이 그런 것을 감수하며 봉사하는 것이 진짜 봉사지”라며 웃어 보였다. 연주회마다 고정 팬을 몰고 다닐 정도로 인기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자신을 위로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덜 늙는 것은 물론, 정신 연령이 자꾸 젊어지고 세포가 죽을 시간, 늙을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옥자(여·78) 씨는 “이전에 몸이 자주 아팠는데 노년에 마음에 맞는 분들끼리 봉사 활동을 하면서 건강이 매우 좋아져 10년째 모임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에 시달리며 더 아픈 것 같은데 연주단에 나오면 신기하게 아프다가도 갑자기 나아지고 즐거움 때문에 아픈 것을 잊어버린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 원장 출신인 박 씨는 요즘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주 나오지 못하지만 매달 한두 번은 연주에 꼭 참가한다.

고양=오명근 기자 om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