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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미숙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28일(月)
나쁜 합의는 현상 유지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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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남·북 2차 회동, 미·북 회담 살려
김정은 ‘北 비핵화’ 의지 모호
北, 核 군축협상까지 주장

트럼프, 美·北회담 충동 결정
文정부, 과도한 對北 유화론
미·북 협상 위해 同盟 희생하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완전 비핵화’ 의지를 둘러싼 남·북·미 외교전이 1차 파국을 맞자 문재인 대통령이 2차 판문점 회동을 통해 불씨를 일단 살려냈다. 김정은의 미·북 회담에 대한 의지가 확인된 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6·12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재확인하면서 회담을 위한 실무 준비 사실도 밝혔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미·북 회담은 취소 결정 이틀 만에 재추진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됐다. 그런데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미국이 제시한 ‘완전한 비핵화(CVID)’와 동일한 수준인지도 불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CVID 수용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때문에 미·북 프로세스가 시작됐고,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게 확인되면서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인데,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되면서도 분명해진 것은 없다.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북으로 시작된 롤러코스터 외교전을 되돌아보면,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라는 단 한마디로 미·북 정상회담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시도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은둔을 깨고 나온 3세대 리더가 던진 첫 카드라는 점이 주효했다. 정의용 실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비핵화 현안에 어두운 인사라는 점도 한몫했다. 김정은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따져보는 게 기본이었지만, 통상전문 외교 관료 출신인 정 실장이 북핵 용어의 뉘앙스까지 염두에 두지 못했을 수 있다. 그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 입성 직후 사드 반입에 대한 몰이해로 소동을 피웠던 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북핵 협상의 역사에 대한 브리핑조차 지루해했던 그는 김정은의 비핵화 발언에 흥분해 충동적으로 회담을 결정했다.

김정은은 이후 후견인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을 끌어들였고, 복잡한 비핵화 조건을 붙이기 시작했다. 일괄타결을 생각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를 하겠다고 주장한 데 이어, 비핵화 조건으로 경제 지원과 체제 보장, 평화협정까지 요구했다.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부상은 핵 군축론을 폈고, 김계관 제1부상은 할 수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실무 협상이 시작된다고 해서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잘 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 어쩌면 김정은이 밝히지도 않고, 의지도 보이지 않은 비핵화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중재역을 자임한 문 정부가 안보 대들보인 한·미 동맹에서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비핵화 대가로 원하는 것이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이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동맹 관계를 희생하더라도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듯하다. 북핵 폐기 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하면 주한미군 지위 문제 등 수많은 논란이 불가피한데, 문 대통령은 27일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애틀랜틱지와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한·미 동맹 해체가 바람직하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문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4년이 채 안 되지만, 34세의 김정은은 50년을 내다보며 한반도 정국을 요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대북 유화적인 문 대통령을 활용해 한·미 동맹을 흔들고 있는데, 문 정부가 그 장단에 맞춰 동맹 형해화(形骸化)에 열중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 기반은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전략적 전환을 했다는 기대감을 접고, 북한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 의지가 구체적으로 입증되고, 핵 폐기가 실행될 때까지 문 정부는 과도한 북한 봐주기보다 한·미 공조를 강화해야 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압박과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문 정부는 ‘나쁜 합의보다는 노 딜(No Deal)이 낫다’는 배수진을 치고 북핵 폐기 협상의 당사자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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