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北核 엔드게임과 저팔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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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부장

부동산업계 큰손 출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롤러코스터 외교’, 벼랑 끝 전술 끝판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저팔계식 외교’. 각본 없는 드라마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코리아 북핵 엔드게임’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협상의 달인’ 트럼프는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상대가 막가파식 위협이나 벼랑 끝 전술로 나올 때마다 초강수로 응수, 포커판을 주도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트럼프는 ‘최대의 압박’ 작전으로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말려버리는 등 밥그릇을 걷어차는 방식으로 김정은을 협상장으로 끌어냈다. ‘신용 보증인’으로 중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차례 큰 역할을 했다. 김정은은 덕분에 ‘1차 부도위기’를 넘겼고 여세를 몰아 소원했던 북·중 관계까지 복원, 비핵화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저팔계식 외교로 정치 심리전을 벌였으나 트럼프가 포커판 자체를 뒤집어엎겠다며 역공을 취하자 일단 꼬리를 내렸다. ‘저팔계식 실용외교’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북한 외교 속성을 빗대서 한 말이다.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억울한 척하면서 어딜 가나 얻어먹을 것은 다 챙기고,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생존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단수 외교술이다. 김정은 체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정은이 체제 수호용으로 3대에 걸쳐 완성한 핵을 몽땅 미국에 내준다면, 군부 강경파의 엄청난 불만을 살 수 있다. 김정은의 비핵화 전략은 ‘핵보유국 지위를 통한 단계적 핵군축 협상’이다. 북한은 북·중 회담에서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언급하며 핵보유국을 전제로 한 살라미식 핵 협상 전략을 공식화했다.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서 한국과 북한, 미국은 제각각이다. 북한이 ‘진짜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했다면 트럼프는 벌써 평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미 전략 자산 한반도 철수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전제로 한 조건부 비핵화다.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비핵화 로드맵 첫 단계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국제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핵탄두 수를 자진 신고, 폐기 목록에 올리는 대신 북·미 불가침조약과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금지 등을 맞교환하는 방안을 놓고 수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핵탄두 및 ICB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등의 단계적 폐기와 이에 맞물린 평화협정이 비핵화 로드맵 협상의 열쇠다. 1983년 북한 백과전서는 평화협정을 ‘(중략) 미국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통일을 방해하지 않으며, 남조선을 강점하고 있는 미군을 철거시킨 다음 조선은 그 어떤 나라의 군사기지나 작전기지로도 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다. 한민족의 운명이 걸린 코리아 북핵 엔드게임이 종착역에 도달하기까지 눈을 부릅뜨고 주시해야 할 것은 ‘가짜 평화’의 엄습이다. 어정쩡한 비핵화 로드맵 협상 결과, 미국민의 북핵 위협은 완전히 해소되지만, 막상 우리의 실질적 핵 위협 제거엔 별 변화가 없고, 사찰·검증이 불가능한 선언뿐인 종잇장 비핵화 전망 속에 한·미 동맹이 무력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

cs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