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베스트 셀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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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RHK)가 화제입니다. 지난 3월과 5월 초에 나온 푸 책은 각각 17만 부와 6만 부가 팔렸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주목받은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3층 서기실의 암호’가 화제가 되기 전까지,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한 책입니다. 국내에도 방영된 A A 밀른 원작의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의 귀여운 일러스트 컷과 푸가 했을 법한 말들을 풀어 놓은 가볍게 읽히는 디즈니 책입니다.

출판사도 푸 책이 이렇게까지 잘될지 몰랐다고 합니다. 느릿느릿, 포근하고 착한 푸가 전하는 위로 그리고 일러스트가 예뻐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책이라는 트렌드와 맞물려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책의 주 타깃인 20~40대 여성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제목, 사진 한 컷에 담아 SNS에 올리기 딱 좋은 표지도 요인입니다.

하지만 이 책만 봐서는 저자가 누구인지, 책의 정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곰돌이 푸 (원작) 지음’으로 돼 있지만 정확하게 푸가 지은 것도 푸 원작도 아닙니다.

책은 일본 가도카와 출판사의 ‘디즈니 True Heart(진정한 마음) 푸의 마음을 바라보는 말’의 번역서입니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니체의 행복론,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논어를, 출판사 편집부가 풀어 놓은 것입니다. 곰돌이 푸가 한 말이 아니라 푸와 통하는 니체의 행복론, 논어 이야기인 것이죠. 대표적인 디즈니 캐릭터에서 키워드를 뽑고, 이를 철학자나 작가의 글과 연결한 시리즈 중 한 권이기도 합니다. 한국판은 제목을 바꾸고 전체적으로 보다 더 소프트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푸의 ‘True Heart’와 함께 미키마우스의 ‘Decision’, 앨리스의 ‘Tomorrow’, 디즈니 공주의 ‘Love’ 같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RHK는 푸 인기에 힘입어 앞으로 5권 정도 더 낼 것이라고 밝혔는데, 아마 이들 책이 아닐까 합니다. 푸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출판사들이 한 번쯤 이런 책을 내야 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미 여러 출판사가 비슷한 책을 잡기 위해 저작권 경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곧 온갖 귀여운 캐릭터를 앞세운 책들이 서점을 휩쓸지도 모릅니다.

캐릭터에도 철학이 있고, 몇 줄 안 되는 가벼운 책이 인류의 위대한 사상가의 두꺼운 책보다 더 깊은 통찰을 줄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은 세상에 나쁜 책은 없으니 가리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버려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캐릭터들로 가득 찬 서가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