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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01일(金)
너무 성급한 ‘경협주도 성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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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文, 남북경협 본격화 대비 지시
증권가는 회담 기류 따라 급등락
6·12 이후 ‘과잉 기대’ 더 걱정

후행 과제인 경협도 險路 예고
北 개방 전환 기대는 비현실적
핵 폐기만큼 ‘신용’구축도 난제


문재인 대통령은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재정의 역할과 준비에 대해서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간 경협 이슈를 꺼내는 데 신중했는데, 미·북 간 사전협상이 순조롭다는 판단에서 ‘그날’(12일) 이후 본격화를 예고한 것이다. 남북 경협에 거는 정부와 시장의 기대는 당연하다. 다만,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국 내 분위기를 ‘도취 상태(euphoria)’라고 했다는데, 경협 낙관론이 광범한 것을 보면 아주 그른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증권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이 다시 성사 쪽으로 방향을 튼 지난달 28일 코스피 36개, 코스닥 28개 등 총 64개 종목이 상한가로 마감했다. 대부분 남북 경협 관련주였다. 가격제한폭이 ±30%로 확대된 2015년 6월 이후 최다였다. 그 사흘 전에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로 가격제한폭까지 급락했었다. 외국인의 투자 패턴은 정반대였다. 최근 한 달간(5월 28일 기준) 외국인은 대표적인 경협 관련 12개 종목에서 1조 원 넘게 순매도했다.

시장에는 북한 비핵화 시나리오에 상관없이 막연한 ‘경협주도성장론’이 자리 잡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북한은 2500만 명의 새로운 내수시장이고, 중국 동북 3성(1억1000만 명)과 러시아 연해주, 중앙아시아 시장까지 접근하는 통로가 된다. 또,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과 낮은 토지사용료로 한국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 경협을 통해 한국의 성장정체를 돌파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신(新)경제공동체 구상을 밝히고,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발족한 배경도 이런 가능성을 담은 것이다. 북한이 신성장동력이니 “이제야말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 가설에 사로잡히면 헛물만 켤 공산이 크다. 그건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발로 땅을 밟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경협은 현재 예단할 수 없는 정치협상에 후행 과제로 논의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이 북한과 모든 경제 교역을 금지한 행정명령이 7개다. 의회를 거쳐야 하는 관련 법규도 20개가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 ‘보상’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지난(至難)할지 직감할 수 있다.

북한에 시장경제가 상당 부분 도입될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르다.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건설’로 노선을 바꾼 것, 일상용품의 90%가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는 실정 등이 낙관의 근거로 나열되는데, 북한은 중국·베트남과 같은 집단지도체제가 아니다. 권력 분점으로 경제 이권을 나누는 정치구조가 아니면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개방이 어렵다는 게 현대 정치사가 일러준 사실이다. 자유화가 최대의 적인 1인-1당 독재의 정치체제에선 국가 통제의 계획경제(‘우리식 사회주의’)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경제특구에 한해 제한적으로 해외 자본 투자를 받는 게 개방의 현실적인 수준이다. 또한, 북한은 한국만의 독무대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비핵화 합의 시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중국 독자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 노동당 참관단이 중국 산업과 농업을 살피고 간 건 그 후다. 중국은 언제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움직일 수 있다.

무엇보다 경협의 선결 과제는 ‘신용’이다. 비핵화-체제보장 합의가 이뤄져도 이행의 관건이 신뢰인 것과 똑같이, 경협에서도 과거의 합의-파기가 반복되지 않을 담보가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차관 형태로 북한에 지원된 9억5000만 달러 상당에 대해 2012년부터 상환기일이 도래하고 있지만, 정부의 상환 요청에 대꾸도 않으면서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해외 자본을 끌어들일 실질 수단으로 국제금융기구 활용을 전망한다. 그래야 위험도가 낮아지고, 민간 직접투자(FDI)가 뒤따를 수 있어서다. 북한에 대한 투자의 유인은 당장의 이윤이 아니라, 신용인 것이다. 북한 경제부흥 프로그램은 가상의 시장이 아니라 냉철하게 현실을 밟고 만들어낸 전략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채 ‘그날’ 이후 경협을 둘러싼 환상과 갈등만 난무한다면, 그게 더 두려운 일이다.
e-mail 오승훈 기자 / 경제산업부 / 부국장직대겸 경제산업부장 오승훈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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