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국제범죄>‘위챗’으로 지시받은 따이공, 위조 카드로 수억대 싹쓸이

- (上) 스마트폰 활용 범죄 활개

앱 깔아 단체 대화방 개설
총책은 中서 메시지로 지시
운반·구매·전달 역할 분담
환치기·마약거래 등 활용

수사기관 추적·검거 힘들어
메신저 대화방 확보가 관건

지난 3월 중국인 A(19) 씨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서울의 유명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값비싼 물건을 마구 사들였다. 중국인 B(여·43) 씨는 남편과 함께 서울 시내를 돌며 명품 시계처럼 값비싼 물건을 구입했다. B 씨 역시 쇼핑을 하면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은 평소 국내에 수십 차례 오가며 구매 대행을 하는 속칭 따이공(보따리상).

이는 전 세계 10억 명이 사용하는 중국 최대 스마트폰 메신저인 ‘위챗’을 통해 구매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챗에서 ‘보내준 카드로 물건을 구매해 주면 4% 정도의 수수료를 주겠다’는 홍보 글을 보고 범행에 가담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조직 총책에게 여권 사진을 찍어 보내 위조된 신용카드 97장을 받아 지시받은 물건을 사들였다. 이들은 위챗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위조 신용카드 운반책, 물건 구매책, 전달책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총책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구입할 물건과 구매 장소, 사용해야 할 위조 신용카드를 하나하나 위챗을 통해 지시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위조된 신용카드를 사용해 1억5000만 원어치 물건을 사들인 혐의(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으로 A 씨 등 9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시를 내린 총책은 중국에 있어서 잡지 못했다.

스마트폰 등 국경을 초월해 소통할 수 있는 기기들이 보편화하면서 범죄에 국경이 없어졌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위조 신용카드, 로맨스 스캠(연인 행세를 한 뒤 돈을 뜯어내는 범죄), 이메일 무역 사기, 마약 거래 등에 해외 스마트폰 메신저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제범죄 조직들이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손쉽게 국내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

국내에 유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접근해 환전을 해주겠다고 속인 뒤 보이스피싱 범행 피해자들의 돈을 입금받는 데 활용한 일당이 중국 현지에서 최근 체포되기도 했다. 이들은 환전이 필요한 국내 체류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챗을 통해 유인해 범죄 수익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데 이용했다. 기존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는 피해자들이 은행에 입금한 돈을 찾아 전달하는 인출책과 송금책 등이 있었는데, 위챗을 통해 학생들을 범죄에 끌어들이면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더 어렵게 한 것이다.

이처럼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쉬워 해외 메신저가 범죄에 주로 활용된다.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를 사용할 경우 범행 모의를 입증할 증거가 될 대화 내용 등을 확보하기 쉽지 않고, 범죄자들이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국내 수사기관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다. 범죄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위챗을 활용해 무작위로 사람을 모집해 범죄를 활용한다면 가담자를 체포하더라도 윗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정규 국제범죄수사5대장은 “요즘 국제범죄 관련 사건을 수사할 땐 피의자의 스마트폰을 먼저 확보해 메신저 대화방을 촬영해둔다”며 “위챗 등 해외 메신저는 대화 참가자가 대화창에서 나가면 기록이 모두 지워지는 일도 있어, 그동안 나눈 범행 관련 대화 내용이 사라지기 전에 증거를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