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순간을 살 때 느려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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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월요병을 안고 출근했더니 벌써 한 주의 끝이고, 여름은 어느새 코앞입니다. 이러다 빈손으로 올 한 해가 끝나겠구나, 성급한 두려움도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니 나이 탓도 해 봅니다. 실제로 어떤 사건의 지속 시간은, 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정보와 기억의 양에 비례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새롭고 흥미롭게 기억할 일들이 많지 않다 보니 자연히 시간이 빠르게 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뇌 신경전달 물질이 줄어들고 처리 속도도 떨어져 생체 리듬이 느려지고 사라지는 기억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일하게 공평하다는 하루 24시간이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는 것쯤,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나온 영국 작가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북폴리오)은 시간이라는 이 문제를 매우 흥미롭게 파고듭니다. 주인공 톰 해저드는 겉으로는 4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1581년에 태어난 400세가 넘은 사람입니다. 뱀파이어나 도깨비는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15배나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희소병 환자입니다.

그는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의 모임인 ‘알바트로스 소사이어티’의 도움으로 8년마다 완전히 정체를 바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엄마는 아들에게 늙지 않는 마법을 건 마녀로 몰려 죽었지만, 21세기 그는 노화 연구를 위해 그를 실험도구로 삼으려는 의료기관과 제약회사의 추적에 시달립니다.

400여 년 동안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지켜봤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당대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맺고 살아왔지만, 그의 소망이라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그에게 남과 같은 일상이란 불가능합니다. 특히 사랑은 절대 금기입니다. 한 번 사랑에 빠졌다 깊은 상처를 얻은 그는 사랑이 왜 불가능한지 알고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하든 상대의 시간은 그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 버리니까요. 하지만 이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옵니다.

긴 시간 동안 삶과 죽음, 시간과 세계, 시간 속에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해 온 톰이 내린 결론은 ‘순간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고, 시간의 모든 조각에 우리 모두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간을 멈추는 방법이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는 400년간의 과거도,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버리고, 사랑하는 그 순간에 몰입합니다.

순간에 충실해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길, 톰이 전하는 누구에게나 똑같게 주어진 시간을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504쪽, 1만5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