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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12일(火)
밀가루 범벅 식탁 위의 情事… 식당주인 아내·떠돌이 직원, 욕망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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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도시를 전전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떠돌이 프랭크(잭 니컬슨)는 로스앤젤레스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던 중 동행하던 친구에게 지갑을 털린다. 돈 한 푼 없이 식당에 남겨진 프랭크에게 식당 주인은 자신의 가게에서 정비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정비일도, 식당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프랭크는 결국 승낙한다. 줄곧 힐끔거렸던 식당 주인의 아내이자 요리사인 코라(제시카 랭) 때문이다. 허름한 원피스에 얼룩이 가득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코라의 뒷모습이 프랭크를 잡아끈 결정적 이유다. 프랭크는 작은 원피스를 찢고 나올 것 같은 코라의 풍만한 엉덩이와 삶에 찌들어 분노가 가득한 얼굴을 잊을 수 없어 향하던 길을 멈춘다. 코라 역시 틈만 나면 자신의 엉덩이를 훑어보는 이 남자의 시선이 반갑다. 역겨운 음식 냄새를 풍기며 자신을 무시하는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남편보다 기름때를 뒤집어쓴 남자가 몇백 배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이 외출한 어느 날 프랭크가 빵 반죽을 하고 있던 코라에게 접근한다. 코라는 기다렸다는 듯 프랭크를 식탁 위에 눕히고 그의 위로 올라간다. 프랭크는 코라의 낡은 가터벨트를 찢어버린다. 여자의 묵은 설움과 지긋지긋한 권태도 프랭크의 손에 같이 찢겨나간다. 식당에서, 침실에서 증오스러운 남편의 손길을 인내하며 연명하던 인생의 한가운데서 여자는 처음으로 육체적·정신적 환희의 아찔함을 맛본다. 기름때와 밀가루 범벅으로 식탁 위에 누운 남녀는 본능적으로 코라의 남편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제임스 M 케인이 1934년 쓴 소설을 영화화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감독 밥 라펠슨·사진)는 삶과 권태에 지친 여자가 낯선 남자와 사랑에 빠져 남편의 살해를 공모한다는 플롯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다. 1981년 한국 개봉 당시 ‘밀가루 정사’ 장면이 화제가 됐지만 영화는 케인의 원작을 지배하는 파격적인 수위의 폭력과 섹스, 그리고 프랭크와 코라가 벌이는 가학적인 정사를 가감 없이 스크린에 옮겨온 것으로 주목받았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쾌락과 감정의 얄팍한 본질을 냉철히 직시하게 한다. 프랭크와 코라가 다짐했던 사랑은 살인에 대한 공판이 열렸을 때 서로를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다. 사랑은, 쾌락은 그렇게 허무하게 휘발하는 것이다. 입담 좋은 변호사 덕에 둘은 풀려나고 남겨진 식당을 운영하며 함께 지내지만 이들은 믿음도, 욕망도 사라진 관계에 염증을 낸다. 설상가상 코라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동안 프랭크가 외도했던 것을 코라가 알게 되며 이들의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감정의 허망함을 부재(不在)로만 보여주지 않는다. 공범인 이들이 들키지 않고 여생을 버틸 방법 역시 서로에 대한 애정이다. 그렇게 필요에 의한, 피상적인 애증으로 프랭크와 코라는 또다시 서로를 끌어안는다. 프랭크는 코라에게 청혼을 하고, 코라는 프랭크의 아이를 갖겠다는 고백을 하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책략이 아닌 꿈을 키운다. 섹스 파트너나 살인 공범이 아닌 서로의 모든 구석을 메워주는 존재가 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이들이 새로운 공명(共鳴)을 품은 순간 코라는 교통사고를 당해 프랭크의 눈앞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탐욕과 살인의 말로에 대한 우화적 결말 대신 프랭크의 무릎 위에 놓인 코라의 그로테스크한 주검을 통해 인간의 감정적 소생과 행로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피상적인지 역설한다.

잭 니컬슨은 늘 그렇듯 최고의 한량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건들건들한 말투와 걸음걸이는 누아르와 스릴러물에 등장하는 ‘문제적 남성’의 전형에 가깝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아이콘은 제시카 랭이 연기한 코라다. 식당에 들르는 모든 남성이 힐끔거릴 만한 몸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는 랭의 묘한 미소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음탕함을 주체못하는 양가적 여인의 완벽한 표식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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