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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12일(火)
自然의 숨겨진 질서에 대한 고찰… 예술, 여기서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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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에른스트 헤켈이 그린 방산충류 스케치 도판(위 사진). 이는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르네 비네가 설계한 기념관 문(아래 사진)의 모델이 됐다.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18) 블로스펠트의 사진과 헤켈의 도판

수업자료 쓰려고 직접 촬영한
블로스펠트 정교한 식물 사진
다양하지만 기하학 질서 갖춘
자연의 근원형식·구조 보여줘

해양성 플랑크톤 연구한 헤켈
수백개의 도판들 직접 스케치
생물학·예술 유사하다고 보며
‘자연법칙 = 神의 메시지’ 여겨

자연 원래 모습이 ‘형태’라면
‘형식’ 은 예술이 담아낸 모습


예술의 형상에 자연의 전체가 들어 있다면, 이는 근본 혹은 근원형식(Urform)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자연의 아무러한 것들이 아니라 그 핵심이고 기본 형태라는 것이다. ‘형태’가 어감적으로 자연이 가진 원래 모습이라면, 형식은 ‘예술이 그려내는’ 모습이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변항 - 항구적 상수에 가깝다. 이것은 카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1865∼1932)의 사진이나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1834∼1919)의 도안에서 잘 나타난다. 블로스펠트의 사진 두세 장을 살펴보자.

# 고사리 줄기 혹은 미나리아재비

실드펀(Shield Fern)은 양치식물 고사리 목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인데, 그 종류만 1000종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느리미고사리’로 찾아보면 된다. 이 실드펀은 줄기가 끝으로 올라갈수록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말려 있지만, 전체는 아름다운 나선형을 그리며 빛을 향해 뻗어 나간다. 줄기 양쪽으로 난 잎은 서로 어긋난 채 대칭을 이룬다. 이 모든 것은 일정한 규칙성 속에서 유연한 곡선을 보여준다. 미나리아재비의 이미지도 좋은 예다(이미지). 이것은 말린 잎의 일부로 5배 정도 확대된 것이다. 한 줄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두 줄기로 나뉘는 형태인데, 그렇게 나뉜 각 줄기의 형태 역시 본래 줄기의 운동적 성격을 유연하게 닮아 있다.(Karl Blossfeldt, ‘Art Forms in the Plant World’ 참조)

# 체계적인 식물 촬영

블로스펠트는 원래 주물공장에서 모형 제작을 배웠다. 그러다 20세 무렵 베를린의 공예미술 박물관에서 소묘수업을 받았다. 그 후 그의 선생(M. Meurer)을 도와 무늬장식에 필요한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33세 때 베를린 공예 미술학교의 조교가 되고, 56세 때 교수가 된다. 1926년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조각품을 찍은 사진 전시 이후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 작업에 주목한 사람 중 한 명이 발터 베냐민이었다. 블로스펠트는 첫 책인 ‘예술의 근원형식’(Urformen der Kunst·1928)으로 유명해졌다.

블로스펠트는 20대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었지만, 사진은 그에게 독자적 장르라기보다는 식물의 세부를 기록하는 보조수단이었다. 그는 말린 식물표본과 이 식물을 찍은 사진을 강의실 벽에 비춰주면서 학생들이 스케치 연습을 할 때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블로스펠트의 식물 사진은 아주 선명하고 정확하며 섬세하다. 꽃이든 잎이든 줄기든, 이것들은 뻗어 있거나 펼쳐져 있거나 굽어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식물의 형태도 손을 대는 것과 같은 인공적 조작을 가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개 말린 상태에서 그 원형이 뒤틀리지 않도록 잘 보관한 후, 10배에서 20, 30배 정도 확대하여 그 앞이나 옆 혹은 위에서 찍은 것이다. 대단히 세심하고 정교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 종류는 마늘이나 보리, 엉겅퀴나 양귀비 혹은 개정향풀이나 참제비고깔 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 라틴어 학명을 붙임으로써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식물표본을 작성하듯이 작업하였다.

놀라운 것은 블로스펠트의 식물 사진이 실용적 수업자료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년 전에 식물의 정교한 세계를 ‘체계적으로’ 촬영했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촬영된 사진 속에 자연의 기본형식과 구조들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예술의 형식과 자연에서 펼쳐진 물리적 형식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카를 블로스펠트가 미나리아재비의 말린 잎을 5배로 확대한 사진. 일정한 규칙 속 유연한 곡선을 보여준다.
# 자연형식은 예술형식

근원형태로서 자연의 규칙성과 유연성은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 블로스펠트의 책에 소개되는 것은 고사리나 히아신스, 단풍나무나 호박 줄기, 아니면 엉겅퀴나 쇠뜨기 같은 식물들이다. 쇠뜨기는 대부분의 양치식물처럼 수천 년 전에도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기후변화나 지역의 토질에 따라 조금씩 변해 식물체계상에서 여러 가지 학명으로 조금씩 다르게 불리기도 하지만, 그 근본형태는 수천 년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동일하다.

잎과 줄기와 꽃의 모양이 얼마나 다양하고 유연하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구조와 기하학적 질서를 보여주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 그것은 그토록 단순함에도 어설프지 않고, 그토록 활기차고 생기 넘치면서도 일정한 법칙성을 느끼게 한다. 사물의 서정적 느낌은 그런 이율배반적 긴장감에서 생겨날 것이다. 이런 긴장감은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나아가 신에 대한 인간의 표상 방식도 돌아보게 한다.

자연이 근본형식에 있어 항구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이라면, 이렇게 되풀이되는 근본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곧 예술이다. 자연의 형태가 항구적이라면, 그것은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지배하는 원초적 법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이 사물의 형태에 대한 1차적 창조자라면, 예술은 이 1차적 창조에 대한 창조이고, 그래서 2차적 창조다. 예술의 이 2차적 창조는 인간 고유의 변형력에서 온다. 블로스펠트가 사진 자체의 가능성보다는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식물 세계의 경이에 열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식물 세계는 어떤 도표적·건축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런 구조는 곧 예술의 형식일 수 있다. 그리하여 자연의 형식과 예술의 형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장식적 구성의 작업에서도 자연탐구가 불가결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자연은 예술의 필연적 모델이자 스승이다. 블로스펠트는 식물 사진을 통해 자연에 깃든 비밀스러운 세계와 그 진귀한 형식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움으로써 자연과 새롭게 결합되기를 바랐다.

블로스펠트의 문제의식 - 자연형식과 예술형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좀 더 밀고 나가면, 자연과 예술은 ‘형태학적으로 하나’라는 데까지 이른다. 에른스트 헤켈이 주창한 일원론적 세계관은 여기에 닿아 있다.

# 모든 유기체의 공통구조

의학자이자 동물학자이며 철학자이자 평화사상가였던 헤켈은 영국 해안가를 탐사하면서 수천 점의 방산충류(放散蟲類)를 수집하고, 이 단세포 생물이 지닌 대칭적 구조에 열광하였다. 그는 이 해양성 플랑크톤의 수천 개 종류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수천 쪽에 달하는 보고서에는 수백 개의 도판이 들어 있는데, 이 도판은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것이다. 그는 뛰어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소묘가이기도 해서 사실에 충실한 그의 도판은 오늘날에도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실제로 그가 그린 방산충류의 스케치는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르네 비네(R. Binet)가 설계한 기념관 문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헤켈이 그린 방산충류는 대개 공 모양인데 줄기에는 가느다란 실 모양의 헛발(위족)이 방사상으로 나 있다. 해파리나 플랑크톤이 보여주는 유기적 대칭성의 미시구조는 그 자체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중 하나가 ‘자연의 예술형식’에 들어 있는 디스코메두사(Discomedusae)라는 해파리다.

자연의 근본형식을 생각해 보는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헤켈이 생물학을 예술과 유사하다고 본 사실이다. 그는 자연의 일반법칙과 신을 동일시하였다. 자연의 법칙이란 그에게 신의 메시지이고, 자연의 물질에는 정신이 들어가 있다. 그의 물질개념은 ‘철저하게 정신화된 물질(eine durchgeistigte Materie)’이다. (그는 ‘세포기억’이나 ‘수정영혼’ 같은 단어를 썼다.) 물질에는 신적 정신이 구현되어 있으므로 서로 유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유기체의 공동원천’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식으로 헤켈은 진화론의 입장에서 생물학의 다양한 부분영역을 서로 통합하고자 애썼다. 미지의 물질이 하나의 세포에서 수정을 거쳐 생명 있는 개체로 진화하듯이, 이러한 생물의 진화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고,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을 철학과 신학으로까지 확대시켰다. 그리하여 생물의 진화와 인간종의 발전에 대한 설명은 영혼과 세계 그리고 신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것이 이른바 ‘일원론적 세계관’이고 그 윤리다. 이 점에서 그의 일원론은 스피노자와 괴테의 범신론(汎神論)과 상통한다. 일원론적 윤리란 무엇인가?

“보다 높은 문화는… 모든 인간에게 가능한 한 행복하여 만족할 수 있는 실존을 부여하는 과제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모든 종교적 독단에서 벗어나, 자연법칙에 대한 분명한 인식 위에 있는 완전한 도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황금률의 오랜 지혜다. 그것은 ‘복음서’의 말을 빌리자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다. 이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통찰은 완전한 국가란 동시에 이 국가에 속한 모든 개별적 존재를 위한 최대한의 행복을 가능한 한 창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사랑과 이웃사랑,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의 이성적 균형은 우리의 일원론적 윤리의 목표가 될 것이다.”(‘세계수수께끼’ 19장, 독일어 위키피디아 ‘헤켈’ 항목에서 재인용)

흔히 개체발생 속에 계통발생이 반복된다고 말해지지만, 헤켈의 이러한 생각은 다양한 각도에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런 일원론에는 위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치주의자들은 헤켈의 이런 생각을 인종주의나 사회다윈주의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사고는 나치즘의 인종주의적 관점과 분명히 다르다. 그는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헤켈은,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전체가 아니라 개체를 중시한다. 국가의 의무도 모든 개개인에게 최대한의 행복을 창출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통찰은 완전한 국가란 동시에 이 국가에 속한 모든 개별적 존재를 위한 최대한의 행복을 가능한 한 창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910년 그는 막스 베버 같은 학자들과 함께 평화주의의 확산을 위해 ‘국가 간 이해를 위한 연맹을 창설하자’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1913년에는 프랑스 지식인과 함께 독일-프랑스 화해를 위한 국제평화위원회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에 번져 있던 민족주의적 국수주의를 비판하였다.

블로스펠트의 식물 사진이나 헤켈의 도안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의 근원형식이 주는 어떤 함의들이다. 꽃과 나무, 잎과 줄기의 근본패턴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마도 삶의 각 단계는, 서로 아무리 다를지라도, 이 근본패턴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또 벗어나선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인격적·윤리적·이념적 일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은 삶과 죽음이 통용되는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을 다스릴지도 모른다. 그러는 한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숨겨진 자연의 법칙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 암시하는 것도 이 같은 자연의 숨은 법칙이다.

예술이 삶의 어떤 가능성에 대한 암시라면, 이 암시는 무엇보다 자연의 숨겨진 질서에 대한 고찰과 명상에서 시작할 것이다. 오늘날 자연이 아무리 파괴되었다고 해도, 그래서 현대의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해도, 자연은 여전히 우리가 화해하며 살아야 할 생존의 근원적 토대인지도 모른다. 화해 이전에, 모든 성찰적 판단의 기준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토대는, 블로스펠트의 사진이 보여주듯이, 모든 살아 있는 사물을 관통하는 어떤 원리를 보여준다.

예술이 보여주려는 것도 이 통일적 원리이고, 이 원리가 구현하는 자연의 창조적 힘일 것이다. 자연과 예술은 삶의 이 숨은 질서를 드러내는 두 원천이다.

(문화일보 5월 15일자 21면 17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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