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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12일(火)
외국인 노동자 ‘네네씨’… 그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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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6) 헬로, 네안데르탈인

170㎝ 키에 터질듯한 허벅지
두툼한 등허리 딱벌어진 어깨
“네네” 말고는 어떤 말도 안해

보일러 수리·하수도 뚫기 등
동네의 온갖 힘든 일 시켜도
품삯 불평 안하고 착한 웃음

그를 놓고 아낙네 머리채 싸움
동네 사내들 술자리 끼었다가
흠씬 얻어맞은뒤 본 사람 없어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말하는 걸 못 봤다. 어쩌다 가볍게 밭은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가 어디에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그를 동네 사람들은 ‘네가’ 또는 ‘네네씨’ 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 사내가 오로지 대답으로써 ‘네’ 또는 ‘네네’ 말고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어쩌면 외국인노동자라서 우리말을 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말을 모르는 게 아니란 걸 난 알고 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그의 눈빛은 말하는 사람의 속까지 이미 다 알아버린 눈빛으로 변하는 걸 난 많이 보아 왔다.

그는 매우 싼 품삯으로 동네 집집마다의 온갖 궂은일을 하는 막일꾼이다. 누구든 그를 보면 한눈에 그가 어떤 거칠고 힘든 일이라도 잘해낼 것임을 쉽게 알아챈다. 170㎝ 남짓한 키의 그는 터질 듯한 허벅지와 탄탄한 종아리, 두툼한 등허리와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굵은 팔뚝에 꿈틀거리며 파묻힌 혈관이 그의 모든 것을 잘 말해준다.

그가 하는 일은 허물어진 담장 쌓기부터 보일러 수리, 하수도 뚫기, 주방 싱크대, 화장실 변기와 욕조 등을 고치는 일인데 주로 동네 아줌마들이 일을 주었다. 그는 어떤 일이라도 정말 즐겁게 했는데 사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페인트로 집 칠하기였다. 그가 집에 칠을 할 때는 페인트의 조색부터 다른 크기와 모양의 붓을 모아 마름질하는 것까지 매우 꼼꼼하게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칠을 할 때의 그 집중력과 섬세함이 그의 얼굴에 어우러져 그의 표정은 황홀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일하는 그의 모습은 숭고하거나 때로 성스럽게까지 보였다.

그는 품삯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주는 대로 착한 웃음을 띠며 받는다. 때로 덜 받거나 못 받기도 했다. 일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녘까지만 했다. 점심과 새참은 집주인이 차려주는데 그는 식성이 매우 좋은 대식가다. 일해 주는 집의 냉장고의 묵은 반찬은 몽땅 그의 차지다. 집주인 아줌마가 횅해진 냉장고를 들여다볼 때 기쁨의 물결이 그녀의 입꼬리를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을 온몸에 번지는 미세한 전율로 느낀다. 쉽고 작은 일이라도 늘 해 질 무렵까지 그가 일하는 까닭은 아줌마들이 남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갖은 허드렛일을 빠짐없이 다 시키기 때문이다. 때론 집 안 청소며 빨래까지 시켰다. 어떤 아줌마는 땀 냄새가 너무 난다며 목욕도 하란다. 그러면 그는 ‘네’하고는 목욕을 했다. 아줌마는 물이 너무 찬지, 뜨겁지는 않은지 자꾸 말을 시키지만 들리는 건 몸에 뿌리는 물소리뿐이다. 일을 마치고 나서는 그는 때론 더 말쑥하고 훤해진 모습이거나, 술대접을 받았는지 불콰해진 얼굴이었다.

하루는 집에 돌아가는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어둠이 짙어진 좁은 골목 몇 개를 휘돌며 따르는 사이 그의 그림자를 놓쳤다. 그런데 거기는 곧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졌으며 어디에도 작은 쪽문 하나 없이 담벼락으로만 둘러쳐진 곳이다. 그야말로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몇 번을 그를 뒤쫓다 같은 실패를 거푸 하다가 결국 그의 집 찾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필요한 사내 네네씨, 그는 거의 하루도 쉴 틈이 없다. 동네는 예전과 달리 밝고 깨끗하며 명랑해졌다. 동네 아줌마들은 별로 시킬 일도 없으면서 네네씨를 앞다투어 불러댔고 그때마다 냉장고의 묵은 반찬 정리가 이뤄졌다.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는 통에 네네씨는 점점 귀하신 몸이 되어갔다. 이젠 그를 부르는 게 아니라 모셔가야 하는 지경이 됐으며 동네 아줌마들의 눈엔 전에 없었던 가느다랗고 푸른빛의 독기마저 눈초리에 서려졌다. 어느 날 홀로 사는 젊은 과부와 옆집 아줌마가 서로 음탕한 년이라고 소문을 내며 비난하더니 급기야 서로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는 일도 있었다. 그 뒤로 경쟁하듯 네네씨를 불러대는 일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네네씨는 바쁘다.

일요일에도 남의 집 일을 마친 네네씨가 어스름 녘 집으로 돌아가는데 동네 어귀에 있는 막걸리집에 동네 남정네들 대여섯 명이 모여 작은 술판을 벌이고 있다. 네네씨를 본 그들 중 하나가 네네씨를 부르며 한잔하고 가라고 권했다. 네네씨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네’ 하며 그들 곁에 앉아 막걸리를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못하는 네네씨는 금방 목까지 붉게 달아 오른다. 얼큰해진 네네씨에게 누군가 “네가야, 너 그 과부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하고 이죽댄다. “네?” 네네씨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얼굴로 외치자 이죽거리던 사내가 말했다. “어럽쇼, 이놈 보게. 네란다. 그러니까 그 과부와 그런 사이다 이거지?” 모두들 짓궂은 소리로 클클 대며 놀리듯 웃는다. 또 다른 사내가 네네씨의 뒤통수를 툭 치며 말한다. “야 인마, 너 여기서 붙어먹고 살려면 행실 똑바로 해.” 그리고 또다시 그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네네씨는 그 사내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어? 이놈이 사람도 치네?” 그러자 다른 사내들이 모두 달려들어 네네씨를 넘어뜨리고 공을 차듯 걷어차고 내지르고 밟아댄다. 그때 막걸리집 아줌마가 나와 말리고서야 네네씨는 더 안 맞을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네네씨 앞의 해가 마지막 붉은 잔광을 부린다. 네네씨의 붉은 머리에 피가 엉기어 검붉다.

그날 뒤로 네네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네네씨가 사라진 동네는 잠깐의 즐거운 잔치가 끝난 뒤 채워지는 허망함이 오히려 예전 동네의 본 모습을 찾은 것 같았다. 큰길과 골목은 도로 지저분해지고 치우지 않은 쓰레기가 곳곳에 널렸다. 공기는 소음과 먼지로 탁해졌고 새들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동네가 이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왔고 집집마다 시끄러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들 머리를 주억거리며 그렇다고 했다.

인천국제공항의 대합실에는 내·외국인의 고조된 여행의 기대와 설렘이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공항 청사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아직 탑승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비행기에서 읽을거리로 챙겨온 인류학 서적을 미리 꺼내 읽기로 했다. 책표지에 그려져 있는 동굴 속 원시인들,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모호한 경계에서의 구부정한 모습이지만 눈빛만큼은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눈빛과 눈매로 표현되어 있다. 그 원시인이 낯설지가 않은데 그가 누구와 닮았는지는 콕 짚어서 생각이 안 난다. 목차엔 각 장마다 인류학적 접근과 해석의 냄새가 짙은 소제목들이 조금 큰 글자로 찍혀 있다.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라진 이유’ ‘현생인류의 학살설’ ‘도태설’ ‘질병설’ ‘유전자 결함설’ ‘흡수설’ ‘화산 폭발설’, 그리고 ‘현생인류와의 유전적 연관’ 등등. 그중에서도 내 눈에 뚜렷이 들어오는 것은 ‘현생인류의 학살설’과 ‘흡수설’이다. 그 두 개의 소제목이 서로 엉기면서 표지의 원시인을 데리고 가물가물한 기억의 골목으로 갔다. 그러자 그 막다른 골목에서 사라졌던 네네씨. 표지의 원시인이 현대인의 옷을 입고 거기에 서서 웃고 있다. ‘아’ 하는 신음 같은 탄성이 나오는데 문득 이름 모를 짙은 꽃냄새와 마른 지푸라기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고개를 들어 냄새를 따르니 170㎝ 남짓한 키에 두꺼운 몸피, 약간 구부정한 등허리 그리고 단정하게 빗었지만 곧 제멋대로 풀려 흐트러진 붉은 머리칼. 맞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 헐값에 허드렛일을 하다가 심하게 뭇매를 맞고 홀연히 사라진 그 네네씨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의 옷차림이 매우 세련되고 비싸 보여 내가 알고 있는 네네씨와 사뭇 다르기에 그를 선뜻 부르기가 망설여졌다. 그가 조금씩 멀어지자 다급한 마음에 망설임을 밀쳐내고 그를 크게 불렀다. “헬로, 네네씨!” ‘응? 왜 내가 헬로라는 말을? 그냥 네네씨라고 부르면 될 일인데.’ 내 부름 때문이었는지 그가 멈칫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그의 팔짱을 낀 금발의 늘씬한 아가씨가 그를 끌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눈치다. 그는 내게 옆 모습만 희끗 남긴 채 그대로 출국장 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비행기 안에서 펼친 인류학 책, 거기엔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1부의 소제목이 있었다. ‘외모와 근력’ ‘지능과 언어능력’ ‘문화적 측면’ ‘종교와 초능력’.

글·그림 = 김의규 한국미니픽션작가회의 초대회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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