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美北 정상회담>트럼프, 11분 앞서 숙소 출발… 회담장엔 김정은 먼저 도착

- 숙소서 카펠라 호텔 이동까지

‘빨간 넥타이’ 트럼프 출발 뒤
‘인민복 차림’ 김정은도 나서

회담장엔 성조기-인공기 배치
레드카펫 등 정상국 관계 표시

사진 촬영 뒤 회담장 이동 전
복도서 통역 낀 채 잠시 대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의 역사적 첫 만남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철저한 조율이 어우러진 세리머니였다. 불과 500여m 떨어진 숙소에서 머물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회담장으로 이동하면서 역사적 장면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겠다는 듯 서로의 동선을 철저하게 조정했다. 두 정상이 처음 마주한 자리를 장식한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 레드카펫은 향후 양국의 정상적 국가 관계를 향한 메시지를 암시하는 듯했다.

두 정상의 숙소에서는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간, 한국시간 오전 9시)를 전후해 차량 출발 준비가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샹그릴라 호텔과 김 위원장의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은 직선으로 불과 570m 떨어졌다. 싱가포르 본섬과 1개의 연륙교로 이어진 센토사섬으로 가는 도중 두 정상의 차량 행렬이 엉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길을 나서는 배려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8시 2분 전용 차량인 ‘비스트’를 타고 숙소를 출발, 8시 10분쯤 센토사섬으로 이어지는 연륙교를 통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센토사섬에 도착했을 무렵인 오전 8시 13분 김 위원장 측도 급박하게 움직였다. ‘김씨 집안의 집사’로 알려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수행 차량에 오르자, 방송카메라 등 호텔 외부 시선이 닿지 않던 로비 앞 공간 안쪽에서 김 위원장이 탑승한 검은색 벤츠 리무진이 불쑥 등장했다. 두 정상은 약 11분의 간격을 두고 각각 숙소에서 출발한 것이다. 김 위원장 측 모터케이드는 수행원과 경호·경비 차량 등 약 20대에 달했다. 북한 측 관영 매체 소속으로 보이는 취재진은 김 위원장의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카펠라 호텔에 도착한 것은 8시 31분쯤. 예정된 시간을 약 30분 앞두고 미·북 정상이 모두 센토사섬에 들어섰지만, 두 정상이 첫 만남을 갖기까지 30여 분을 각각 어떻게 보냈는지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두 정상이 회담 초반의 단독 정상회담을 앞두고 참모진과 수행원으로부터 최종 사전 조율안을 브리핑받고, 정상 간 담판에서의 대응 전략 등을 최종 검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숙소 출발은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였지만, 회담장 건물에 먼저 들어선 것은 김 위원장이었다. 검은 인민복을 입고 검은 서류봉투와 안경을 손에 든 김 위원장은 8시 53분쯤 전용 리무진을 통해 회담장 앞에 도착, 대기실로 들어섰다. 이어 8시 59분 트럼프 대통령의 리무진이 회담장 건물 앞에 도착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는 다른 입구로 건물로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회담장으로 들어서는 두 정상 모두 역사적 정상회담의 무게감을 느끼는 듯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두 정상이 첫 조우한 회담장 로비에는 성조기(6개)와 인공기(6개)가 교차해 걸렸고, 바닥에는 레드카펫이 깔렸다. 향후 양측이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겠다는 상징적 메시지라는 해석을 낳았다.

두 정상의 첫 만남은 예정 시간을 약 4분 넘긴 9시 4분에 이뤄졌다. 두 정상은 약 12초간 오른손을 맞잡은 채 악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왼손으로 잠시 김 위원장의 오른팔을 감싸며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도 특유의 ‘악력 악수’와 같은 돌출 행동 없이 신중한 모습을 유지했다. 약 10초 동안의 포토타임 후 두 정상은 단독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두 정상은 이동 중 복도에서 통역 1인씩을 옆에 둔 채 잠시 서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동하면서도 종종 김 위원장의 팔을 감싸며 길을 안내했다.

싱가포르 =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