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환영… 自我가 던지는‘소통의 대화’일 수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저리 캠프의 서’. 캠프는 중세시대 억압된 여성이었으나 영적 체험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생생한 육성으로 남겼다. 에이도스 제공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 찰스 퍼니휴 지음,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머릿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아마도 정신분열적 증상인 조현병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머리를 움켜쥐고 환청을 호소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수없이 봐 왔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격려하거나 비판하고, 혹은 창의적 영감을 준다면 과연 이걸 조현병으로만 넘길 수 있을까. 혹시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인간의 의식과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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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황당한 추론이지만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 더럼대 교수이자 젊은 심리학자인 저자는 머릿속 목소리에 대한 대중적 선입관에 과학적 반기를 들었다. 때론 우리를 친구처럼 격려하고, 폭군처럼 비난하며, 뮤즈처럼 영감을 주는 내면의 목소리는 단순히 정신분열적 증상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가 던지는 소통의 대화라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어보자. 혼잣말의 경우다. 2013년 영국 윔블던 테니스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와 맞붙은 앤디 머리는 2세트를 앞서가다 3세트부터 역전당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잠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 앞에서 스스로 격려하는 말을 했다. “넌 이 경기에서 지지 않을 거야.” 코트로 돌아와서도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조코비치의 벼락같은 서브를 깨고 다섯 번째 세트를 이기며 우승했다.

스포츠 코칭 업계에서 혼잣말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꽤 철저한 연구가 계속돼왔다. 혼잣말의 영향력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일수록 혼잣말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15세기 신비체험가 마저리 캠프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캠프는 잉글랜드 노퍽 지방에 살았던 여성이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다양한 종교적 환각을 경험하고 신과 자유롭게 대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맹이었으나 특별한 경험을 토대로 ‘마저리 캠프의 서’라는 책을 남겼다. 물론 목소리를 듣는 것과 결합된 캠프의 강박적 울음은 측두엽 뇌전증의 징후였을지 모른다. 그의 환영에 떠다니던 흰 반점들은 편두통 증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캠프의 책 페이지마다 가득한 생생하고 독특한 목소리들은 그것이 기록으로 남게된 이유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례는 풍부하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 등 철학자의 사상,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같은 예술가와 작가의 창작 이야기, 심리학자 러셀 헐버트의 찰나의 의식에 관한 실험방법인 기술적 경험 표집(DES), 그리고 인지행동치료(CBT) 등 철학, 문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두루 아우르며 인간 마음의 비밀에 한 걸음 더 접근하려 애쓴다.

저자는 “우리의 머릿속 목소리는 우리의 자아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라고 말한다. 그는 “머릿속 목소리는 내면의 자아가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대화이고 의미이며 소통하고자 하는 표현이다. 운동선수의 혼잣말,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중세의 신비주의자, 목소리 환청에 시달리는 예술가의 창의적 작업은 내면의 자아가 던지는 소통의 메시지”라며 “따라서 주변의 누군가가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면, 이제는 우려와 공포의 시선을 거두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문제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고. 444쪽, 2만 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