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이선희가 다시 부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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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아스라이 성벽이 너무 높아서／ 아이는 올라갈 수 없었지／ 아이는 턱 괴고 앉아서／ 보고픈 얼굴을 그리네／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는데’. 아담한 체구에, 맑은 음색이면서 폭발적인 힘을 분출하는 가창력이 돋보여 ‘작은 거인’ ‘영원한 디바’ ‘만년 소녀’ 등으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이선희(54)의 ‘성(城)안의 아이’ 시작 부분이다. 그가 처음으로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만 담아 1996년에 내놓은 제10집 앨범, ‘첫사랑’ 뜻인 ‘First Love’에 발표했다.

시집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도 펴낸 그는 다재다능하고 감수성이 두드러진다. 발표된 지 오랜 노래들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 ‘그 붉은 향기 너에게 전한다／ 나를 잊고 잠든 밤에, 네 방 가득 장미꽃 향기 번지도록’ 하는 ‘장미’,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 사용된 ‘인연(因緣)’ 등 제13집 앨범 ‘사춘기’(2005년)의 노래도 모두 그가 작사·작곡했다. 그는 여고 2학년 때 노래를 배우려고 찾아간 작곡가 장욱조 사무실에서, 당시는 무명이던 작곡가 이세건이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안 불러준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제가 부르면 안 될까요” 하고 물어, 허락을 받았다. 그중의 한 곡이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대 그리워하네’ 하고 시작하는 ‘J에게’였다. 간직해오던 그 악보로, 3년 뒤인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 혼성 듀엣 4막5장으로 출전해 대상을 받음으로써 단박에 한국 대중음악 최고 스타가 됐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는 성대 보호를 위해 거의 항상 목에 스카프를 두른다. 매일 아침 발성 연습 전엔 일절 말도 하지 않고, 무대에서 노래할 때 외에는 낮은 목소리로만 말한다. 그런 그가 데뷔 후 처음으로, 다른 가수들이 발표했던 노래 ‘바람 기억’ ‘제발’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등 6곡을 재해석해 부른 리메이크 앨범 ‘르 데르니에 아무르(Le dernier amour)’를 최근 내놓았다. ‘마지막 사랑’의 프랑스어다. “어릴 적에 보컬리스트를 꿈꾸며 좋은 노래와 가수들에게 흠뻑 빠졌던 것처럼, 꼭 그때처럼 취해서 불러보고 싶었다”고 한다. 오는 29일∼7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무대를 시작으로, 내년 초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갈 그의 가창력이 또 다른 도전에 나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