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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0일(水)
‘GPI’ 르완다 103위 - 美 121위… 꼭 ‘번영=평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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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지수 1위’ 아이슬란드 vs ‘꼴찌’ 시리아 평화로운 사회의 필요충분조건은 강력한 군대와 경제적 번영이 아니라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행복한 삶과 평등한 관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호주의 국제경제평화연구소(IEP)가 이달 발표한 2018 세계평화지수(GPI)에서 1위에 오른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정경이고, 오른쪽은 163위로 최하위를 기록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야르무크 캠프에서 지난 5월 탱크가 진주해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김지윤·제임스 김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 (16) 평화와 성장의 상관관계 <끝>

- 때론 ‘비례 관계’
평화지수 상위 유럽·북미 많고
내전·분쟁국가는 주로 후진국

몽테스키외 “무역땐 상호의존
성장·평화 주도하는 데 앞장”

- 때론 ‘반비례 관계’
원자력·컴퓨터, 安保 이유 개발
전쟁이 장기적 성장 부르기도

평화로운 환경 여부 상관없이
경제 어떻게 운용하느냐 중요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이란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 성장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상호 관계성은 통일부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한반도정책의 3대 목표 중 하나로 ‘한반도 신경제공동체’라는 주제 아래 거론된 바 있다. 여러 면에서 보았을 때 현 정부의 한반도정책은 평화와 번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와 번영

현 정부만 이러한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사상가로 알려진 몽테스키외는 평화의 원천을 무역이라고 말하며 무역하는 국가들은 상호 의존적인 무역관계로 인해 경제성장과 평화를 주도하는 데 앞장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또한 평화를 가리키며 ‘무역, 지속적인 경제 성장 및 번영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경제적 안정과 번영이 평화를 조장해 사회적 개방과 다자협력이 촉진된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평화와 번영은 서로를 자극하는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화와 번영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풍부하다. 호주 정보기술(IT) 사업가인 스티브 킬렐레아가 설립한 국제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IEP)에서 2008년부터 해마다 출간하는 세계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GPI)는 23가지 통계를 활용해 163개국이 국내 및 국제 분쟁에 어느 정도 관여하는지를 추적한다. 6월에 발표된 2018 GPI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은 지역은 유럽 다음으로 북미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이었다. 이 지역들의 뒤를 이어 남중미, 아프리카, 유라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중동-북아프리카로 분쟁과 갈등이 가장 높은 국가들은 후진국이 대부분이었다. 국가별로 평화지수와 국민 개인소득의 상관관계를 검토해보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화는 경제 수준뿐만 아니라 발전 유형과도 관계가 있다는 근거도 있다. 토론토대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에 의하면 IEP의 GPI는 높은 인적자본 그리고 삶의 만족도와 상관관계가 있고 불평등과는 부적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평화로운 사회는 기술 및 창조 분야와 인적 자본에 있어 더욱 앞서가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평등한 삶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전쟁과 부유

하지만 예외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인 멕시코는 GPI 순위가 140위였고 세계 1, 2번째로 커다란 경제와 시장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각각 121위와 112위로 우즈베키스탄(104위)이나 코트디부아르(110위) 그리고 르완다(103위) 같은 국가들에 비해 평화롭지 못해 보인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결과가 그렇게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테러리즘과의 끊임없는 전쟁과 높은 범죄율을 상대로 최강의 군사력과 치안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또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차기 강대국으로서 국가안보와 자주국방에 대한 투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반민주주의 정책과 인권 침해 문제는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평화와 번영의 관계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탠퍼드대의 미국 역사학자인 이언 모리스는 ‘전쟁의 역설’이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이나 영국 또는 미국 같은 강대국들이 전쟁 때문에 평화와 부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엽기적이지만 이러한 시각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 컴퓨터 및 현대 항공기와 같은 혁신기술들은 모두 국가안보 때문에 개발됐다. 역사적으로 인터넷은 미 정부가 핵 전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서 설계한 것이고, 실리콘밸리는 오늘날의 소셜미디어 창업가들보다 군축계약을 통해 시작된 프로젝트나 마찬가지다.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함으로써 미국은 우주과학과 혁신기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즉 강대국의 경쟁과 분쟁 가능성이 제3차 산업혁명인 디지털시대의 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전쟁은 긴박감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원자폭탄 개발을 불과 6년 만에 이뤘다.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특히 이러한 사건을 미국의 사회기반시설의 상태와 비교하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미국의 사회기반시설들은 후진국 수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아직까지 고속철도나 자랑할 만한 항공사 또는 공항이 없다. 중국의 경우 고속철도를 통해 베이징(北京)에서 상하이(上海)까지 약 1318㎞ 되는 거리를 4시간 30분 안에 도착한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부터 뉴욕까지 약 364km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가장 빠른 기차로 약 3시간에 걸려 갈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공사와 공항을 미국에서 찾기는 힘들다. 올해 발표된 스카이트랙스(Skytrax) 랭킹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은 국제공항은 덴버공항(29위)이었고 항공사는 델타항공(32위)이었다. 미국은 강대국이지만 앞서가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전쟁 준비에 있어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의 관심과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개발과 혁신이 이뤄지지 않은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러한 사례들을 고려해 봤을 때 평화와 번영의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학술적인 근거가 엇갈리는 이유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0년 독일 노동연구기구에서 90개국을 대상으로 1970∼2000년 사이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내전으로 인해 경제가 연간 0.01∼0.13%포인트 감소하고 국가들 사이 고강도 분쟁의 경우 연간 성장률이 0.18∼2.77%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결과는 분쟁의 강도가 중요한 변수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분쟁 피해가 낮은 경우 성장률이 증가하는 추세도 나타났다.

2005년 스위스 취리히공대 연구에 의하면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국가들은 경제적 피해를 부담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쟁의 인과적 효과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특히 분쟁이 길거나 피해가 높을수록 장기적인 경제 성장률은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의 집합행위이론을 확립해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 맨커 올슨에 의하면 기존 사회 기득권은 개인·집단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기술 채택이나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공익을 희생하고 경제 성장 과정을 지연시키는 데 힘을 기울인다. 올슨에 의하면 전쟁을 통해 (특히 패자인 경우) 국가의 기존 사회 기득권이 파괴되며 새로운 기술 도입과 경제 개혁에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면서 더욱 높은 성장률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국제정치학자인 A F 케네스 오르간스키는 전쟁으로 국가의 산업 능력이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되면 재건 과정을 통해 산업투자가 확고히 늘어나는데 이러한 자본 투입으로 성장률 또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선진국이 전쟁을 통해 경제적 피해를 보는 경우 더욱 발전된 기술을 기반으로 재건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이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전쟁이 경제성장에 나쁘지 않은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론들도 신빙성 있게 보인다.

경제성장을 위해 모두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분쟁을 치르는 기간 동안 경제적인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위에 거론된 연구결과는 피해가 높은 분쟁이 장기적인 면에서 나쁘지 않은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평화와 번영의 관계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두 국가 이야기

위에 거론된 여러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관계를 쉽고 당연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평화 또는 분쟁이나 경제 성장 및 개발은 따로 다뤄야 하는 문제들이다. 평화와 경제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평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우리는 분쟁이 왜 일어나고 이와 관련된 원리를 이용해 어떻게 평화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경제개발과 성장의 원천은 평화와 상관없이 경제적인 요소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의 역사만 살펴봐도 평화와 번영의 직접적인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6·25전쟁 이후 정전협정이 체결됐으나 남북은 지난 65년간 전쟁의 그늘 아래서 공존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부상했고 북한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정학적인 환경은 같았는데 긴장과 분쟁의 위험 속에서 한국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출지향적인 공업화정책과 사회의 노력 때문이었다. 그레그 드 래고 전 미 ABC 보도국장은 지난 4월 진행한 어느 인터뷰에서 “역사를 보면 전쟁과 같은 여러 번의 역경을 이겨낸 한국 사람들이 좋다”며 “6·25를 겪고 강냉이빵을 먹고 고난을 이겨낸 한국인들은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다시 창조해낸다”고 했다.

▲  김지윤·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누구도 분쟁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경제개발과 번영의 출처를 평화에 둔다고 해서 경제가 활성화되고 한반도에 새로운 변화가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평화로운 환경이 유지되더라도 개발과 성장은 경제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둥근 구멍에 사각형 교구를 끼워 맞출 수 없는 것과 같이 아무리 평화스러운 환경을 유지하더라도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밑받침하는 시장원리와 피땀으로 뭉친 노동자들의 노력이 없다면 경제발전은 어려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아무리 좋아도 국가안보를 소홀히 하면 평화를 지키기는커녕 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과 맞서 평화는 평화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냉정하고 차분하게 이 두 가지 자산을 챙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일보 2018년 5월 9일자 24면 15 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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