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총리도 패싱?… 통제 벗어난 ‘보이지 않는 손’ 있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역사교과서 개정안 행정예고

李총리 “試案, 공식입장 아냐”
文대통령 “하위직 불이익안돼”
정책기조 교육부서 뒤집혀
‘배후에 강경세력 있나’ 의구심

교육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근 벌어진 일을 보면 요지경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대통령과 총리, 부총리가 공개석상에서 밝힌 정책 기조가 이상하게 교육부 내에서 뒤집히고 있다는 점에서다.

교육부가 22일 행정예고를 통해 발표한 ‘2020 교육과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봐도 그렇다. 언제, 왜, 누구에 의해 뒤집혔는지가 의문이다. 정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5월 2일 집필기준 시안 최종보고서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란 표현을 삭제토록 권고했을 때만 해도 “평가원의 최종보고서가 교육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2월 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출석, 평가원의 시안 초안에 대해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은 교육부의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안다”며 “연구진의 개인 의견 단계를 어떤 부처의 공식 의견이라고 말할 순 없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또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도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교육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날 “정부와 협의하거나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절차를 건너뛰고, 논란이 될만한 사안을 누군가 강하게 밀어붙이길 원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대부분 시안의 내용 그대로를 담고 있는 정부 행정예고가 나온 데 대해 정부의 교육관을 좌지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강경세력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정부 정책의 혼선과 엇박자는 교육부가 지난 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했던 전직 청와대와 교육부 관계자 등 1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명백한 위법행위는 사법 처리가 불가피하겠지만 단지 정책상의 오류만으로는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시 정부 방침을 따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게까지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부처별 적폐청산 과정에서 하위직 공무원까지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과거 업무를 추궁당하는 과정에서 불안감이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이 일자 문 대통령이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이후 교육부의 수사 의뢰는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는 행보였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직제상 문 대통령과 이 총리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조처를 하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배후에 강경세력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