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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6일(火)
엄숙함 벗겨낸 익살스러운 묘사, 양반 사회 위선도 까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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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신의 파적도, 종이에 담채, 22.5×27.1㎝,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전준엽이 만난 한국의 美感 - (8) 풍자·해학의 조선 풍속화

김득신 ‘파적도’
시골농가의 도둑고양이 소동
탐관오리 재산 강탈 연상시켜
박진감 넘치는 배경연출 탁월

김후신 ‘대쾌도’
만취해 몸 못가누는 사대부
술앞에선 양반도 평민도 같아

조영석 ‘이 잡는 노승’
안거수행에도 가려움 못참아
체면 버리고 옷 벗은 수도승


‘대락필이(大樂必易)’. 가장 좋은 음악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 2500여 년 전 공자님 말씀이다. 내용과 형식이 명쾌해야 가장 높은 경지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진리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예술’이 그런 경지다. ‘쉬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예술’은 대중예술이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환영받는다.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내는 예술’도 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하는 문제를 복잡한 형식과 논리에 얹어 표현하는 경우다. 20세기에 나타난 많은 예술이 그렇다. 현대예술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이유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가 풍자와 해학이다.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우리 전통 회화에서도 보인다. 윤리와 도덕으로 덧칠한 위선의 시대에 감정의 침묵을 깨뜨리는 재미있는 그림들이다.

“우당탕탕! 꼬꼬댁 꼬꼭, 삐악삐악… 아유! 저놈의 괭이 새끼!”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낮 조용하던 시골 농가 한 마당에서 약육강식의 소란이 벌어졌다. 주린 배를 채우려고 먹잇감을 노리던 도둑고양이가 순식간에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나는 중이다. 졸지에 새끼를 도둑맞은 어미 닭은 날개를 퍼덕이며 고양이에게 달려들고 있다. 운 좋게 목숨을 구한 병아리들은 혼비백산 사방으로 달아나고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의 걸작 ‘파적도(破寂圖)’다. ‘고요함을 깨는 그림’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소리까지 들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단순히 풍속만을 주제 삼은 것은 아니다. 돌발적인 상황을 빌려 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연출한 작가의 솜씨는 전통미술에서는 그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땀 흘려 일군 재산을 강탈하는 탐관오리를 연상시키는 도둑고양이를 내세워 시대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다.

단원, 혜원과 함께 조선 영·정조 시대 풍속화를 이끌었던 김득신은 화원 집안 출신이다. 출중한 풍속화를 많이 남겨 풍속 화가로 알려졌지만 인물, 산수, 영모화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791년 김홍도와 함께 영조 어진 작업에도 참여할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다.

풍속화에서는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단원의, 풍속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풍속의 기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풍속을 포함한 배경 연출을 뛰어나게 소화해 현장감을 표현하는 것이 장기였다. 이는 신윤복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파적도’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그림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구성이다. 그림의 짜임새를 말하는데, 좋은 그림일수록 구성이 탄탄하다. 작가가 화면에 배치한 여러 가지 짜임새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그림 감상의 묘미다.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뼈대로, 주제를 읽어내는 틀에 해당된다.

이 그림의 경우 시골 농가의 해프닝을 내세웠지만 극적 역동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의도인 듯싶다. 극적 상황, 즉 긴장감을 주는 기본 뼈대는 사선의 움직임이다. 오른쪽 위 뛰어나오는 두 사람에서 시작하여 탕건, 어미 닭 그리고 왼쪽 병아리로 이어지는 사선의 흐름이 그것이다.

또한 화면 가운데 수직 기둥을 경계로 두 가지 상황이 대비를 이룬다. 왼쪽은 소란의 실체인 병아리 사냥이고, 오른쪽은 주인 내외가 소란을 수습하려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의 눈은 왼쪽으로 끌린다. 그림 주제인 정적을 깨는 요소를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정적인 요소인 기둥 바로 앞에 있는 주인의 포즈는 아주 요란하다. 도망치는 고양이와 함께 가장 역동적인 자세다. 맨 버선발에 앞으로 고꾸라지듯 튕겨 나오는 자세로 탕건은 벗겨지고 돗자리 짜던 기구는 나뒹굴고 있다. 고양이를 향해 쭉 뻗은 장죽은 주인의 다급한 마음을 더더욱 간절하게 보여준다. 이어 뒤따라 나오는 부인의 자세가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을 한 번 더 강조한다.

조용한 농가 적막을 깨는 소란의 주인공인 고양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는 또 있다. 뒤뜰에서 비쭉 나온 나뭇가지가 고양이를 향해 내려와 있고, 삼각형의 역동적인 포즈로 그린 어미 닭의 방향 또한 고양이를 쫓고 있다. 또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줄기는 부인의 머리로 이어지고, 다시 앞으로 쭉 뻗은 부인의 팔은 주인의 머리로, 장죽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시선을 끌고 간다.

그리는 방법에서도 소란을 일으킨 쪽과 이를 수습하려는 쪽을 달리 표현했다. 고양이는 짙은 먹을 사용해 면이나 점 위주로 그렸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부부는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렸는데, 이치에 맞는 움직임을 정확히 그리기 위한 생각으로 보인다. 배경이 되는 집이나 뒤뜰의 나무는 선과 점, 면을 적절히 섞어 그렸다. 두 가지 상반된 상황과 요소를 이어주려는 의도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시선이 도달하는 곳은 고양이다. 그런데 정작 고양이는 소란과는 무관하다는 듯 얄미운 여유까지 보여준다. 비웃는 듯 돌아보는 표정과 ‘S’자로 흔드는 꼬리가 그것이다. 이게 바로 해학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으로 예술과 인연이 깊다. 이런 이유로 서양미술에서는 술과 관련한 작품이 많다. 그래서 디오니소스가 빈번하게 출연한다.

▲  김후신의 ‘대쾌도’, 종이에 담채, 33.7×28.2㎝, 18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우리나라 그림에서도 술과 연관된 작품을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김후신이 그린 ‘대쾌도(大快圖)’다.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술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는 작가의 풀이가 담긴 작품이다.

조선 후기 활동했던 김후신은 풍속화와 인물화에서 걸출한 기량을 보였던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김홍도와 함께 영조 어진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직업 화가로 출세했으며, 관직에도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풍속화는 이 그림 한 점만 전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술에 관대하다. 김후신이 살았던 조선 후기도 그랬다. 음주 문화의 폐해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했다. 급기야 영조는 여러 차례 금주령을 내려 국가 차원에서 다스려야 할 정도였다. 이 그림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가을 햇살 좋은 오후, 만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인물을 세 사람이 부축해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가고 있다. 아마도 취한 사람의 집이겠지. 술에 거나하게 취해 술판에서 주정부리는 사람을 주변 친구들이 수습했던 모양이다. 술독에라도 빠졌다가 금방 나온듯한 얼굴의 인물은 지금 한창 술기운이 오른 듯 기분 좋은 상태로 떠밀려 가고 있다. 행색을 보니 사회지도층인 양반네들 같다. 술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작가의 심중이 드러나 있다.

그러면 그림으로 들어가 술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과 만나보자.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질적인 요소를 함께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그림 위쪽 나무숲은 서양화식 표현 방법인 원근법과 입체적 묘사를 따르고 있다. 즉 옅은 색채와 먹의 농담으로 나무의 질감과 입체감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또한 원근법에 충실한 나무의 배치로 3차원 공간을 솜씨 있게 꾸며 놓았다. 전통회화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반면 주제인 인물들의 표현은 선을 주로 사용하는 전통 기법에 따라 평면화시키고 있다. 분명하고 힘찬 선으로 처리한 나무숲에 비해 인물들은 유연하고 옅은 선으로 그려냈다. 만취한 인물의 몽롱한 정신 상태를 강조하려는 의도적인 처리가 아닐까.

이처럼 어긋나는 요소를 한 화면에 대조적으로 배치하면 표현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던 김후신은 분명 시대를 앞서갔던 화가였다. 그러나 확인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아 작가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조영석의 ‘이 잡는 노승’, 종이에 담채, 23.9×17.3㎝, 18세기. 학고재 소장

지금이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자 나이쯤 산 사람들에게는 구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풍경이 있다. 속옷 벗어 이를 잡는 일. 이것은 일상사 중 하나였다. 그러니 조영석(1686∼1761)이 살았던 조선 중기는 어땠을까. 조선 회화 중 가장 재미있고 특이한 그림인 ‘이 잡는 노승’은 당시 당연한 소재로 통했을 게다.

그렇다고 해도 체면을 중히 여겼던 양반으로 현감 벼슬까지 지낸 사대부 화가의 그림치고는 파격적이다. 관아재 조영석의 성정으로 미루어 보면 위선과 체면으로 무장한 당시 정서를 비트는 그림으로 보인다. 그는 영조로부터 세조 어진 모사의 명을 받았지만 환쟁이로 불리는 것을 우려해 어명에 불복, 파직까지 불사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표현 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당시 평민의 진솔한 일상사를 모티브로 한 출중한 작품 14점을 남겼다. 이 그림들은 ‘사제첩(麝臍帖)’이란 화첩으로 묶었는데, 표지에 ‘남에게 보이지 말라. 범하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라는 경고까지 써넣어 그림을 천히 여겼던 양반 사대부의 불문율을 지켰다. 제목까지 조영석답다. ‘사제’는 사향 노루의 배꼽이라는 뜻이다. 사향노루가 사냥꾼에게 잡히면 자신의 배꼽 향기 때문이라고 여겨 배꼽을 물어뜯는다고 한다. 조영석은 자신의 그림이 사슴의 사제와 같다고 해서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이다.

이 작품도 그런 연유에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안거 수행을 마친 노승이 만행 길에 몸이 근지러워 참지 못하고 나무 그늘에서 이를 잡는 우스꽝스러운 정경이다. 오랜 안거로 초췌한 행색이다. 듬성한 머리며 제멋대로 자란 수염. 수양으로 정신을 다듬은 노승도 이의 공격에는 도로(?)아미타불일까. 이를 손가락으로 잡았지만 스님 체면에 살생은 못 하고 난감한 표정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라보는 눈동자와 입술에서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사대부의 위선과 예술가의 본능적 욕구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실천했던 조영석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이다.

(문화일보 6월 5일자 24면 7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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