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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인구 기자의 컬처 톡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7일(水)
농부 소년 태웅이와 산골 소녀 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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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8시 10분 케이블 채널 tvN에서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됐습니다. 김숙·정형돈 등이 경기 안성의 한 농가를 방문해 농사일을 거드는 콘셉트였는데요. 시골 가서 생활해본다는 점에서 ‘삼시세끼’와 비슷한 ‘체험형 예능’ 중 하나일 걸로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한태웅이라는 ‘농부 소년’이 대번에 눈에 띄더군요. 참으로 기막힌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16세의 중학생인데 ‘프로’ 농부처럼 일을 하는 거였죠. 벼농사는 물론 소·염소·닭을 기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게다가 나이를 의심하게 하는 구수한 사투리와 행동이 마치 60대 어르신을 연상시켰어요.

김숙의 말마따나 “무슨 설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성숙함, 사춘기 ‘중딩’의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흔하고 뻔한 예능이지만 한태웅이라는 ‘신의 한 수’로 다른 어떤 프로그램과도 견줄 수 없는 ‘차별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 8년 차 농부인 태웅 군이 처음 알려진 것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농사가 좋아요’를 통해서였습니다. 특유의 말투와 진정성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장 태웅 군에게 섭외 요청이 빗발쳤습니다. 밀려드는 스케줄 때문에 한 매니지먼트회사의 도움까지 받았습니다. 순박한 소년이 대중 앞에 무방비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득 2000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산골 소녀 영자’가 떠오르는 건 저만의 기우일까요. 영자는 순박한 생활 모습이 KBS ‘인간극장’을 통해 대중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던 인물입니다. 오랫동안 부친과 단둘이서 도시 문명과는 단절된 채 산속에 살아 지극히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대중은 영자의 때 묻지 않은 마음씨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후원을 자처하고 나섰고, 급기야 영자는 서울로 이주해 CF를 찍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뒤의 일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큰돈을 노린 범인에 의해 영자의 부친이 살해됐고, 영자도 후원자에게 학대받다가 결국 비구니가 됐죠. 정말 끔찍한 비극이었습니다.

태웅 군을 영자와 비교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지난 20년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달라졌고,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태웅 군의 순수성과 진정성은 과연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요.

태웅 군은 ‘꿈’을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실하게 흙하고 같이 살면서 애 낳고 행복하게 농사짓는 것”이라고요. 프로그램도 좋지만 이로 인해 태웅 군의 소박한 꿈이 깨지는 일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clark@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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