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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er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7일(水)
“트로트 외도요? 가야금 대중화에 일조했다고 자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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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금과 국악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이예랑 명인이 분신 같은 가야금을 품에 안고 향후 활동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이 가야금은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정창원(正倉院)에 보관된 신라 시대 가야금을 정밀 촬영해 복원한 것이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가야금 명인 이예랑

2005년 김해전국가야금대회
‘최연소 대통령상’ 이름 알려
일란성쌍둥이 동생 이사랑과
‘가야랑’ 결성해 10년간 활동
출산 후 2개월간 6차례 공연

모친·이모들 이름난 국악가족
6세 때 화장지 풀어 살풀이춤
21세부터 입시생 지도하기도
지금도 레슨을 받겠다고 줄 서
“열정만 있으면 배울수 있어요”


지난 2005년 열린 ‘제15회 김해전국가야금대회’. 수상 발표에 전국이 들썩였다. 최연소 대통령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만 24세, 이예랑(38) 명인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이기도 하다. 당시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명인이다”란 찬사가 쏟아졌다. 김해전국가야금대회는 1991년 시작 이후 28년 동안 3253명이 참가한, 국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다.

이예랑은 그 후 일란성 쌍둥이 동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 외국어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친 이사랑과 2008년 ‘가야랑’이란 팀을 꾸려 파격적인 트로트 음반을 내놓았다. 국악 대중화를 위해 전면에 나서 10년간 국내외를 파고들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대중은 이 시도를 어떻게 평가할까, ‘천재 국악 명인’은 앞으로 뭘 준비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시작한 인터뷰는 서울 동대문구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거실에만 8대의 가야금이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가야금과 함께 또 하나의 보물, 이예랑의 품에는 얼마 전 출산한 예쁜 여식이 안겨 있었다.

“예전에는 국악이 고리타분하고 잠이 오는 음악이라고 했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음악 아니냐고요. (웃음) 하지만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국악 마니아층을 넘어 젊은이들도 ‘나도 가야금을 배워 볼까’라고 느낄 정도로 우리 소리에 대한 이미지가 한층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기쁘고 보람을 느껴요.”

그에게 지난 시간의 활동에 대한 나름의 총평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성년이 된 후 가야금과 함께한 지난 20여 년 세월이 2개월여 같다고 했다. 그만큼 가야금에 파묻혀 매진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결혼도 사실 생각이 없었다고. 가야금과 연을 맺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지난해 독신주의자였던 김용준(45) 변호사를 만났고, 그만 서로 한눈에 반해 벼락같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예랑은 어렸을 때부터 가야금 신동 얘기를 듣고 자랐다. DNA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예인(藝人)의 피가 흐르고 있다. 어머니는 가야금 후학을 양성하는 연주자 변영숙 씨다. 이날 변 씨가 이제 걸음마를 뗀 동생 이사랑의 아들인 영랑(2) 군에게 가야금으로 ‘아리랑’을 들려주자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아이가 고개를 흔들고 장단을 맞추며 흥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계면조를 하면 슬픈 춤을 추기도 한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스마트폰은 관심도 없단다. 이예랑은 “조기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카를 보고 실감했다”고 전했다.

이예랑의 셋째 이모인 변진심 씨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클래식한 궁중음악인 ‘정가(正歌)’의 대가이다. 넷째 이모인 변성금 한양대 교수는 한국거문고협회 회장을 지냈다. 다섯째 막내 이모는 변종혁 추계예술대 대학원 겸임교수로 해금연주자다. 이예랑의 유년 추억 하나. 6세 때 어머니가 공연하던 공설운동장에서 돌연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더니 청중 앞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풀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살풀이춤을 춰 박수를 받는 장면이 목도됐다. 변 씨는 그때 “이 아이가 예술성이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뼛속 깊이 가야금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이예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학사), 전문사(석사)를 마쳤다. 전문사만 해도 예술사 성적이 1, 2위를 해야 입학할 수 있다. 21세 때부터 입시생을 지도했다. 자신보다 세 살 어린 이가 첫 제자였는데 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학교 동기들도 가르쳤다. 스파르타식으로 그야말로 눈물이 따끔하게 나올 정도로 독한 선생이었다. 가야금 인재를 양성하는 ‘이예랑 가야금’ 대표, 대학생 최초의 서울예술의전당 독주회 개최 등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가야금 산조 ‘앓음다움’ 앨범은 전량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지금도 전남대 국악과에 출강해 후진을 키우고 있다. 이런 기량을 지녔는데 왜 가야금 연주를 곁들인 퓨전 트로트 곡을 들고 가요계 문을 두드렸을까.

“젊은 나이에 명인이 됐고 제자도 많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인데 뭐가 부족해 쌍둥이 가수로 나섰느냐고 일부 국악계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했어요. 가야금을 대중화하려면 말로만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 동생이 먼저 얘기해 뜻을 같이하게 됐죠. 국악, 가야금 전공자가 할 일이 바로 이를 사랑할 사람을 만드는 일 아니겠어요. 전공자끼리 손뼉을 치고 격려할 게 아니라요. 며칠 전 한예종 20주년 기념 가야금과 총동문회가 있어 갔더니, 교수님께서 ‘취미로 가르치니 내가 행복해지더라. 국악애호가를 더 늘려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제 생각과 같았어요. 기획사도 없이 10년간 활동했는데 요즘은 국악의 대중화를 외치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껴요. 쑥스럽지만, 지방에 가면 곳곳에 제 팬카페가 있어요. ‘국보를 잘 모셔야 한다’며 직접 차로 역까지 바래다 주시는 분도 많으세요. 퇴직 후에 등산만 했는데 가야금 연주를 듣고 힐링하며 건강도 호전됐다고 말씀하십니다.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영광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예랑이 이를 위해 10년 동안 직접 가야금을 뜯고 낭랑한 목청을 돋운 행사는 셀 수도 없다. 3일 동안 4000㎞를 이동하고 보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다. 방송을 본 후 오지의 이장, 면장, 통장이 꼭 와달라고 간청하는 일도 잦았다. 공연을 마치고 정을 담아 싸주는 지역 특산품부터 농산물만 차에 한 아름일 때가 많았다. 강원 영월에서는 지금도 목련차를 보내준단다. 해외 공연도 20개국 넘게 했다. 브라질에 갔더니 오랫동안 나라를 떠났던 한 원로 동포가 손을 꼭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 동포는 “재외교포 방송을 보고 가야랑을 알게 됐는데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고국을 떠나 있으니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 향수를 자극해 더 애틋하고 가슴 깊이 울림을 줬던 것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레슨을 하지만 지금도 이예랑에게 가야금의 깊은 세계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가야금으로 유튜브에서 스타로 떠오른 이가 “이예랑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며 입시를 준비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고 경기 용인에서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찾아와 ‘읍소’했다. 한 새터민은 청소 도우미를 하면서 13세 딸의 레슨을 부탁했다. 7개월 만에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에 감동한 새터민은 딸을 평생 곁에 두는 제자로 받아달라며 전국대회 상금을 들고 왔다(마음만 받았다고 한다). 국립국악원에서 11년간 가야금을 배운 한 중년 여성도 1년 6개월 넘게 레슨을 받고 있다. 대학 때부터 제자를 양성하다 보니 아이 엄마가 된 후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2006년에는 경기 고양시 일산 신촌초등학교에 실비만 받고 가야금반을 만들어 지도했는데 한 학기 만에 전국대회에서 입상했다. 이예랑은 “선생님만 한 분이 없어 다시 찾아왔다고 하는 이들이나 꼭 제자로 받아달라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예랑은 가야금의 장점을 ‘오랫동안 숨 쉬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심장’이라고 정의했다. 나를 만나게 해주고 너를 만나게 해주며, 나를 알게 하고 너를 알게 하는 섬세한 기능이 있다고 했다. 10년간의 활동을 토대로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고 곧추세워 대중화의 디딤돌을 튼실하게 놓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출산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벌써 6차례나 공연을 진행한 배경이다. 오는 9월에는 가족 전체가 독일 영사관 초대를 받아 독일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음악성이 없어 못 하겠지 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에요. 가야금을 배우려면 비싸겠지, 망설이지 마세요.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고 아리랑 한 곡 멋지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배우고 싶은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국악을 사랑하고 우리 소리에 담긴 선율을 마음껏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야금 명인의 열정은 불잉걸이었다.

인터뷰 = 이민종 부장(사회부) horizon@munhwa.com
e-mail 이민종 기자 / 사회부 / 부장 이민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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