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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9일(金)
생각의 힘을 키워 나를 자유롭게 하는 心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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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는 450년의 시간을 넘어 현대인에게 ‘영혼의 치유법과 삶의 기술’을 들려준다. 자료사진

- 성학십도, 자기 구원의 가이드맵 / 퇴계 이황 편집, 한형조 독해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유학의 기본강령·학습법 담은
퇴계 이황이 쓴 ‘성학십도’
마음수행 측면서 집중 재조명

사서삼경 등 경전에 들어있는
철학·세계관 체계적으로 정리

막막한 ‘道’ 앞에서 좌절한
사람들에게 ‘목표 의식’ 제시


유교(儒敎)는 지금 기껏해야 뒤떨어진 규범을 강요하는 윤리학 취급을 받는다. 구한말 일제 강점의 원흉으로, 서구적 근대화를 지체시킨 장애물로 여기는 인식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 온전한 유교(주자학) 국가였던 조선 500년간 축적된 유산은 그저 전문 학자의 연구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인문학 공부 바람이 불고, 신자유주의의 압박 속에 몸과 마음이 소진된 사람들이 ‘자기 수행’을 목마르게 찾았지만, 유교에서 구하지는 않았다. 오랜 전통 속에 철학적으로 농익은 ‘유교’가 있을 터이고, 또 ‘수양’ 방법론으로써의 ‘유교’도 있지만 그것을 현대적 맥락과 요청에 맞게, 체계 있게,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시도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기껏 ‘교양’ 수준의 책들이 나오곤 했다.

철학박사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형조 교수가 쓴 이 책은 기다리던 바의 책이 아닌가 싶다. 이미 동양철학과 조선유학, 불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권의 저서와 대중매체의 글로 내공을 알린 저자는 조선 시대 퇴계 이황(1501∼1570)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구원에 이르는 도정’이라는 심학(心學)의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분석·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교의 ‘마음공부’ 수행법이다. 책을 잡은 독자들은 그저 ‘공자왈 맹자왈’로 흘려들었던 사서삼경 등 경전에 들어 있는 철학과 세계관을 자연스레 정리하는 기회를 갖게 될뿐더러, 서구의 철학·종교와 종횡무진 비교되는 그 사상적 맥락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성학십도’의 해설서가 없지 않지만, 전문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1568년 겨울, 이황은 열여섯 살 선조의 곁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동안 자신이 익힌 “구원(聖)의 도정(學)을 열 장(十)의 그림(圖)에 담아” 선조에게 올렸다. ‘성학을 위한 열 개의 그림(聖學十圖)’이다. 방대한 유교 고전에서 핵심 텍스트를 선별해 이황의 의견을 덧붙인 성학십도는 나중에 나온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聖學輯要)’와 함께 조선 유학의 구원론을 완성한 책으로 저자는 꼽는다.

▲  성학십도에 실린 ‘제1 태극도’. 인간의 기원을 설명한다.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진차(進箚)’는 “도무형상(道無形象) 천무언어(天無言語)”로 시작한다. “도는 형태가 없고, 하늘은 말씀이 없다”라는 이 구절에 유교의 세계관과 심학의 요체가 들어 있다. 예컨대 기독교의 하나님처럼, “나를 믿고 이 길을 따라가라”고 일러주면 좋겠지만, 유교의 세계관에 그런 초월자의 순순한 인도는 없다. 유교는 인간의 길이 동물적 본능이나 혹은 초월적인 지시에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발견’의 모험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길을 찾을까. 오직 자신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으며, 자신을 믿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 오직 학습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게 유교 심법의 핵심이다. 성학십도는 그 막막한 도(道) 앞에서 좌절하고 헤맬 사람들을 위한 등불인 셈이다.

“우리는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이 심학의 처음일 것이다. 맨 앞의 ‘제1 태극도(太極圖)’는 유교의 우주관이자 인간관을 보여준다. 우주의 중심은 태극이고 그 중심인 무극(無極)의 활동으로부터 우주가 장엄하게 돌고, 온갖 생명이 태어나고, 계절과 사건이 시작됐다. 태극은 일종의 ‘의지’로서 물질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여기에서 조선 주자학의 오랜 논란거리인 이(理)와 기(氣)의 구분이 나온다. “중심(太極=理)과 물질(음양·陰陽=氣)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불리·不離), 서로 뚜렷이 구분된다(부잡·不雜).”

이 같은 유교의 세계관은 서구 현대 철학의 바탕을 깐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와 유사하다. 스피노자는 자연을 신으로 보았고, 라이프니츠는 주자학의 이(理), 혹은 태극(太極)은 서구의 신(God)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유교 심학의 포인트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사람에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를 “인간의 서판(書板)은 비어 있지 않다”고 서구철학에 빗대어 말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작동하는 그 본성에 따라 자신을 구현하는 것이 곧 구원이다. 퇴계는 이 공부가 “심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본바탕이 자연(天)에서 왔다는 것, 그것은 완전하고 지선한 것이었다는 것, 그런데 육신의 전락과 마음의 혼란으로 그 빛과 힘을 잊어버렸다는 것, 그러므로 이제 해야 할 일은 그 잊혀진 망각을 두드려 깨우고, 그 오염된 현실을 정화시켜 나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상에서의 경(敬)의 실천’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책은 원문과 한문에 조사와 어미를 붙인 현토(懸吐), 그리고 번역문에 이어 방대한 주석과 해설을 첨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안개에 가린 산의 모습을 그려주고, 소의 겉모습만 보이는 눈에 내부 근육과 골격, 살과 피를 생생하게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교는 규범을 강요하는 윤리학이 아니고, 자기 속 자연을 존중하며 개인화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미학에 가깝다”면서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성학십도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852쪽, 3만 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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