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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6월 29일(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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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복면기왕 우승자가 27일 가려졌다. 복면가왕이 아니다. 복면기왕(棋王)이다.

케이블 바둑 전문채널 K바둑이 우승상금 1억 원을 내걸고 진행한 국제 복면기왕전에서 대국자는 복면을 썼다. 한·중·일 고수들이 출전했지만, 누군지 모르니 맞혀보는 재미가 있다. 평소 대국할 때 버릇이나 기풍(棋風)으로 알아챌 법하지만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 33명, 중국 22명, 일본 9명으로 64강전을 시작해 4강전에 한국 3명, 중국 1명이 남았고, 결승 3번기에서 닉네임 ‘다크나이트’가 ‘방탄유리’를 2 대 0으로 꺾었다. 복면을 벗은 ‘방탄유리’는 박진솔 8단이었다. ‘불패청년’ 가면을 쓰고 나온 이세돌 9단은 초반 탈락했다. 아직 베일에 싸인 ‘다크나이트’는 국내 랭킹 1위 박정환 9단이 유력하다고 한다.

국내 바둑계의 산증인 김인(75) 9단은 ‘반전무인(盤前無人)’ 경지에 올라야 진정한 고수라고 했다. 바둑판 앞 상대의 경력·기색을 의식 않고 두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바둑계에선 복면기왕을 두고 점잖지 못하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복면을 쓰면 반전무인에 근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선입견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관전은 덤이다.

복면기왕이 포맷을 차용한 음악 프로그램 복면가왕도 3년 넘게 순항 중이다. 편견을 깨고 실력만으로 승부한다는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던 아이돌 가수의 가창력에 감탄하고, 국적과 성별까지 속인 반전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얼굴을 가리니 진면목이 보이는 아이러니다. 스펙 아닌 능력으로 당당하게 벌이는 경쟁에 관객은 쾌감을 느낀다. 출연자들도 가면을 쓰니 울렁증을 딛고 편안하게 부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스 시대 연극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칭하던 페르소나(persona)는 인격·성격을 뜻하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와 어원이 같다. 복면은 숨겨진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장치일 수도 있다.

복면의 익명성은 양면을 가진다. 복면가왕처럼 선입견을 지우는가 하면, 복면에 기대 사회 규범에서 일탈한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쏟아진 러시아 월드컵 선수, 예멘 난민을 향한 악성 글은 차마 옮길 수 없다. 쓰레기 글이 넘치면 정작 절실한 글은 뒤로 숨는다. 복면가왕과 복면기왕은 결국엔 복면을 벗는다. 복면을 벗을 자신 없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에게 ‘신문고’를 두드릴 권리를 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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